“실수 반복 않겠다” 패전도 꼼꼼히 기록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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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軍史파견대가 기록한 6·25]

첫 공중-지상 합동공격 ‘스맥작전’
전투기 8대 투입… 언론까지 초청
중공군 역공 예상못해 64명 사상

국가기록원이 2013년 처음으로 공개한 켈로부대원 사진. 부대원들이 위장을 위해 중공군 군복을 입고 있다. 동아일보DB
국가기록원이 2013년 처음으로 공개한 켈로부대원 사진. 부대원들이 위장을 위해 중공군 군복을 입고 있다. 동아일보DB
MHD는 미군이 패한 전쟁도 기록하고 있다. 비록 졌지만, 다시는 같은 패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공식적인 군사(軍史)로 남기고 있는 것이다. 3편에서 다루고 있는 ‘스맥작전(Operation SMACK)’은 6·25전쟁에서 미군이 패한 대표적인 전투다.

스맥작전은 1953년 1월 25일 경기 연천 티본(T-Bone) 고지의 감자 고개(Spud-Hill)를 점령해 중공군 포로를 잡아오는 작전이었다. 미군이 처음으로 공중과 지상전력 합동 공격작전을 시도한 전투실험이기도 했다. 당시 한국에서 작전을 수행한 미 5공군 소속 전투기 8대와 미 7사단 31연대 예하 1개 소대가 투입됐다. 미군은 당시 언론까지 초청할 정도로 작전 성공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F-84 선더제트 전투기가 약 2만1770kg의 폭탄을 투하했지만 중공군에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미군의 공격을 예상하고 폐광 안 깊숙이 들어가거나 지하 깊이 참호를 파고 숨었기 때문이다. 이후 미군은 중공군의 역공에 밀려 사상자 64명을 낸 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패전을 지켜봤던 한 미국 언론이 “(미군은) ‘쇼’를 잘 감상할 수 있도록 컬러로 인쇄된 유인물에 시나리오까지 소개하기도 했다”고 보도하자 미국 현지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비판적인 기조로 돌아섰다. 클레어 호프먼 당시 미 상원의원은 이 작전에 대해 “미군들이 콜로세움에 갇힌 검투사와 뭐가 다를 게 있느냐. 미군이 목표도 없는 전투를 계속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결국 1953년 2월, 6·25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로턴 콜린스 미 육군 참모총장이 미 상원 국방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MHD는 스맥작전의 예행연습부터 작전계획 수립, 현지 정찰, 작전명령 하달 등 전 과정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MHD는 이 작전에서 합동성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예상과 다른 상황이 발생했는데도 최초의 작전 시나리오대로 전투를 강행했다”고 지적하고 “지휘관들이 전장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지휘관의 민첩성과 유연성을 강조하는 교리는 현대전에서도 미군의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를 잡았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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