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부 2개, 지침도 따로…방역전쟁 매뉴얼 다시 짜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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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메르스를 막아라]<3> 손발 안맞는 정부 -지자체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했던 김모 씨(51).

김 씨는 자신이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한 날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환자가 이 병원을 다녀갔다는 소식을 듣고 관할 보건소에 신고한 뒤 자가 격리자에 이름을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씨의 불안감은 계속됐다. 메르스에 치명적이라는 신장질환을 앓고 있었기 때문. 김 씨는 보건당국 콜센터에 다시 한번 문의를 했고, 곧 자가 격리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인 시설 격리 조치를 취해주겠다는 답을 들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김 씨는 시설로 이송되지 못했다. 시설 격리를 위한 장소 마련이 지연됐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A연수원을 시설 격리 장소로 지정하려 했지만 해당 보건소와 지방자치단체가 거부한 것이다. 김 씨는 적절한 시설 격리를 받지 못하다 뒤늦게 증상이 발현돼 확진 판정을 받았고, 그의 가족들이 다시 격리되는 악순환을 겪어야 했다.

○ 보건 당국 지침 일선 보건소에선 먹통

보건복지부와 보건소의 엇박자가 메르스 확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메르스 환자가 본격적으로 증가세를 보이던 지난달 말 보건당국은 보건소에 의심신고가 들어올 경우 상부 보고를 철저히 할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보건소는 안이한 대응으로 확진환자의 신고를 지나쳐 다량의 격리자를 양산하기도 했다. 보건소의 늑장 대응으로 격리 대상자들의 격리가 늦어지기도 했다. 30대 회사원 유모 씨는 “지난달 27일 아들과 삼성서울병원에 다녀왔는데 열흘이 지나서야 지역 보건소로부터 자가 격리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보건당국의 통일된 지침이 없어 일선 보건소의 혼란이 가중되기도 했다.

복지부는 11일부터 병원 외부에 호흡기 환자를 위한 별도 공간(선별진료소)을 설치하라고 권고했지만, 보건소에는 별다른 권고를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음압시설, 발열카메라 등을 갖춘 선별진료소를 둔 보건소가 있는가 하면, 아직도 선별진료소가 없는 보건소도 있다.

방역 체계의 머리와 손이 따로 노는 것은 보건당국과 지방자치단체가 보건소에 대한 지휘 권한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소는 기본적으로 복지부 지휘를 받는다. 하지만 보건소장을 포함한 보건소 인력의 인사권은 해당 지자체에 있다. 행정자치부, 복지부가 정책 지침을 내려도 영이 잘 서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보건당국과 지자체가 강력한 협력 체제를 갖추지 않는 한 방역의 최전선인 보건소는 따로 놀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서울의 한 보건소장은 “35번 환자(삼성서울병원 의사)가 나타났을 때, 서울시는 접촉자에 대해 하루 2회 이상 체크하는 능동격리, 복지부는 증상 발현 후 신고를 유도하는 수동격리를 지시해 혼란스러웠다”라고 말했다.

정영철 광운대 법학부 교수는 “현재는 복지부와 지자체가 각자 도생하는 형국”이라며 “중앙 정부가 컨트롤 타워가 되고 지자체는 손발이 되는 형태로 감염병예방법이 재정비돼야 한다”고 말했다.

○ 보건소 의사 채용 하늘의 별 따기

열악한 인력 상황도 보건소가 제 역할을 못 하는 한 가지 이유다.

특히 전체 격리자가 수천 명을 넘어서면서 보건소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다. 전남도는 16일 보성군보건소 간호사 38명이 자가 격리자 173명을 돌보기에 역부족이어서 인근 군(郡) 보건소 간호인력을 지원받아야 했다. 서울 서초구보건소도 35번 환자 발생 후 격리자 관리를 감당하지 못해 구청 소속 직원 160여 명을 지원받기도 했다.

그나마 있는 인원도 전문성이 떨어져 보건 당국의 지침을 이행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3년 기준 전국 254개 보건소에 근무하는 인력 1만2736명 중 7%(887명)가 의사고 이 중 60%(535명)가 공중보건의다. 대부분이 의료현장 경험도 짧고 감염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공보의로 채워지면 방역에는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 특히 공보의는 경북(87명), 전남(73명), 전북(69명), 경남(68명) 순으로 많이 배치됐다. 의료환경이 열악한 지역일수록 초짜 공보의가 배치돼 감염에 취약할 우려가 있다.

서울 도심에서도 보건소가 감염병에 대응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의사를 확충하는 건 쉽지 않다. 서초구보건소는 감염병 담당 의사가 사직한 뒤 지난달부터 두 차례 채용 공고를 냈지만 지원자가 없어서 쩔쩔매고 있다. 보건소 의사는 ‘전문계약직’으로 월 500만∼600만 원 정도를 받는다. 권영현 서초구보건소장은 “의사들이 이를 적정 월급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민원업무 등으로 보건소 근무가 예전처럼 편하지도 않다. 가정의학과, 내과 전공자에게도 문을 열어뒀는데 감염병 관리 업무가 힘들다 보니 지원을 안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건소 인력 확충 없이는 방역 최전선이 뚫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전병율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은 KAIST를 만들 때 외국 박사 출신을 영입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줬다”라며 “의료인이 공공보건을 위해 일할 수 있게 인센티브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유근형 noel@donga.com·이샘물·박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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