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정상 참석 막판 반전… 막후엔 ‘이병기-스가 라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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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한일 물밑 협상 채널은

윤병세-기시다 라인일까, 이병기-스가 라인일까. 아니면 제3의 채널인가.

22일 한일 양국 정상의 상대국 기념식 참석이 전격 성사된 배경을 놓고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역대 최악인 한일관계 속에서 정상들에게 상대국 행사 참석을 건의하려면 그들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핫라인’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통상적인 외교채널 외에 비선(秘線)이 가동된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12일 미국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한일 간) 막후교섭들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지난해 4월 시작된 한일 국장급 위안부 교섭이 비공개라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서울에선… 朴대통령 “역사적 기회” 박근혜 대통령(가운데)이 22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가 우리말로 인사를 하자 참석자들과 함께 웃으며 박수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서울에선… 朴대통령 “역사적 기회” 박근혜 대통령(가운데)이 22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가 우리말로 인사를 하자 참석자들과 함께 웃으며 박수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당초 기념식 참석에 관심을 보이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안보관련법제 국회 심의를 이유로 불참으로 기울다가 지난 주말에 전격적으로 참석을 결정했다. 19일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일본 외무성 외무심의관을 한국에 보내 이런 의사를 전했다. 한일 막후교섭의 흔적이 노출되는 순간이었다. 스기야마 심의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조태용 외교부 1차관을 만난 뒤 기자들에게 “총리와 외무대신의 명령으로 급하게 왔다”고만 밝히고 구체적 내용은 말을 아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방일을 불과 이틀 앞둔 시점에 차관보급 간부가 한국까지 찾아왔다는 점이 궁금증을 자아냈지만 외교부는 “방일 준비의 기술적 조정”이라며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스기야마 심의관은 업무 상대방인 김홍균 외교부 차관보(해외출장)보다 급이 높은 조 차관을 만났다. 이런 경우를 통상 예방(禮訪)이라고 부르지만 외교 당국자는 “이번에는 예방이 아니라 본방(本訪)”이라고 설명했다. 실질적인 내용을 두고 협의가 이뤄졌다는 뜻이다. 그만큼 21일 윤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의 한일회담이 치밀하게 준비됐고 정상의 행사 참석과도 긴밀히 연계됐다. 청와대와 일본 총리관저는 이날 한일 외교회담과 만찬이 종료되는 시점에 맞춰 기념식 참석 사실을 공동 발표했다.

외교장관회담보다 덜 공식적이지만 좀 더 내밀한 채널이 가동됐을 것이라는 관측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관심을 끄는 채널은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 라인이다. 이 실장은 주일 대사 시절 스가 장관과 거의 매달 점심을 같이하며 ‘특수 관계’로까지 발전했다. 두 사람은 2013년 12월 16일 한국대사관저에서 흉금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며 신뢰를 쌓았고 이 실장이 국가정보원, 청와대로 자리를 옮길 때마다 스가 장관이 먼저 연락해 축하 인사를 건넸다. 청와대는 ‘이병기-스가 라인’의 존재를 공식 부인하고 있지만 현재 두 사람의 역할도 정상을 보좌하는 비서실장 업무로 같아서 주목을 받았다.

또 다른 관심 인물은 ‘아베의 외교 책사’로 불리는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국가안보국장이다. 그 역시 이 실장과 주일 대사 시절부터 인연이 깊다. 지난해 1월 안보국 설립 과정에서 국정원의 도움을 받았고 10월 방한 때 당시 이병기 국정원장을 만났다. 야치 국장은 자신의 업무와 상관이 없는데도 22일 도쿄에서 열린 주일 한국대사관 주최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에 참석하겠다고 일찌감치 통보한 인물 중 한 명이다.

한일의원연맹도 윤활유 역할을 했다. 한일의원연맹이 13일 9년 만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한일 국회의원 친선 축구대회를 재개한 것도 분위기 조성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새누리당 원유철 정책위의장이 주관하는 한일의원 친선 바둑교류전도 다음 달 11, 12일 이틀간 국회 사랑재에서 개최된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은 22일 “한일 의원들이 다음 달 9∼11일 일본에서 회의를 개최하고 현안 문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했다”며 “8·15 전 국회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한 대기업 총수가 이달 초 아베 총리를 관저에서 만난 사실을 놓고 막후 채널이 가동됐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1일 한일 현인회의 참석차 방한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일본 총리 등 자민당 원로그룹이 귀국 후 아베 총리를 만나 리셉션 참석을 설득한 것도 주효했다는 후문이다.

조숭호 shcho@donga.com·고성호 기자 / 도쿄=배극인 특파원
#국교정상화#한일#5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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