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정훈]전관예우와 상고법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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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사회부장
김정훈 사회부장
김현웅 서울고검장을 새 법무부 장관으로 낙점하기까지 이번에도 청와대의 인선 과정에서 최대 난적은 ‘전관예우’ 의혹이었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 여럿을 후보자로 올려놓고 검증작업이 진행됐지만, 로펌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상당수가 고액의 수임료 수입 때문에 결국 검증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탈락했다고 한다. 돌고 돌아 새 장관 후보자 자리는 전관예우 관행의 특혜를 누릴 기회가 아예 없었던 현직의 김 고검장에게 돌아갔다.

황교안 총리 역시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17개월간 로펌 변호사로 있을 때 17억여 원의 수입을 올린 것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고위 법조인들이 공직에 진출하는 사례가 늘면서 변호사 개업 때 돈을 얼마나 벌었는가는 이제 인사 검증의 제1척도가 돼 있다.

2011년 이른바 ‘전관예우 금지법’이라 불리는 변호사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국민은 전관예우 관행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으며 이는 사법부와 검찰에 대한 불신의 핵을 이루고 있다. 전관예우 금지 조항(변호사법 제31조 제3항)은 퇴직 전 1년간 근무했던 기관의 사건을 퇴직한 날로부터 1년간 맡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대부분의 고위 판검사가 퇴직 후 1년쯤 지나면 전관으로서의 ‘약발’이 떨어진다는 시장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어느 정도 전관예우를 억제하는 방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유독 대법원의 경우에는 이 조항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대법관 정수가 14명이고, 임기가 6년이니 대법관 출신 전관 변호사는 평균 1년에 2명 정도밖에 배출되지 않는다. 수치상으로도 1990년 이후 25년간 배출된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54명에 불과하다. 대법원이 연간 처리하는 상고심 사건이 3만6000건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찾는 수요에 비해 공급은 거의 없다시피 한 셈이다.

퇴직 대법관이 생기면 대형 로펌들이 치열한 영입 경쟁을 벌이는 것도 이런 희소성과 그에 따른 엄청난 시장가치 때문이다. “퇴직 1년 후 본격적으로 개업을 했는데 대법원 사건이 어찌나 많이 밀려들던지 ‘새끼 변호사’를 여럿 두고도 이들이 작성해 놓은 소송 서류를 일일이 검토하느라 코피를 쏟을 정도였다”고 털어놓은 한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고백은 전혀 놀랍지 않은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대법원이 내놓은 상고법원 도입안은 고질적인 전관예우에도 특효약이 될 수 있다. ‘법령 해석의 통일에 관련되는 사건’ 또는 ‘공적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은 대법원이 직접 재판을 하고, 이와 관련이 없는 사건은 상고법원에 넘기자는 안이다. 이렇게 된다면 대법관 출신 변호사에게 몰리는 사건이 크게 줄 것이고, 대법원에서부터 전관예우가 설 자리가 좁아지게 된다.

이는 역으로 현직 대법관들로서는 퇴직 후 경제적 부를 누릴 기회를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상고법원 도입을 처음 추진할 때 대법원 내부에서 가장 먼저 “우리 현직 대법관들이 과연 이걸 수용할 수 있을까”라는 얘기가 나왔던 것도 바로 기득권을 기꺼이 버릴 수 있겠는가 하는 망설임이었다. 하지만 결국 대법관들은 이를 전폭적으로 수용했다.

본보가 지난달 실시한 국민 여론조사에서 상고법원 설치에 응답자의 63.7%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최고법원인 대법원부터 변화가 필요하다는 갈망이 담긴 결과다. 상고법원이 만병통치약은 아니겠지만, 전관예우 근절의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다면 국민 입장에선 한번 해볼 만한 시도다.

김정훈 사회부장 jnghn@donga.com
#전관예우#상고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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