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신연수]한일 수교 50년의 대차대조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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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제철(현 포스코)은 조상의 피로 건설된 것이다.” 한국의 철강왕 박태준 전 포철 회장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국내 자본도 없고 해외에서 돈을 빌리기도 어려웠던 1960년대 포철은 대일(對日)청구권 자금의 일부로 세워졌기 때문이다. ‘산업의 쌀’인 철강을 생산함으로써 한국은 비로소 200년 늦게 산업혁명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한국이 영국 미국 일본의 뒤를 이어 제조업 강국이 된 데는 철강산업이 든든한 바탕이 됐다.

▷어제로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았다. 1965년 맺은 한일협정은 굴욕적 협정이라는 비판이 따랐다. 일본은 3년간 점령했던 필리핀에 ‘전쟁 피해 배상금’ 등으로 8억 달러를 지불했다. 반면 35년간이나 식민 지배를 한 한국에는 ‘경제 원조’ 형식으로 3억 달러의 차관을 포함해 6억 달러를 줬다. 필리핀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직접 참여해 한국과는 국제적 지위가 달랐다는 것이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주장이다. 한국은 그 돈을 종잣돈의 일부로 삼아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필리핀 미얀마 등이 배상금을 흐지부지 써버리고 경제도약의 기회를 놓친 것과 비교하면 한국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일본도 한국의 경제성장을 통해 많은 이익을 봤다. 한국이 수출주도 성장을 하는 동안 일본은 부품과 기계를 팔아 막대한 무역흑자를 냈다. 50년 동안 한국이 일본에 본 무역적자만 5164억 달러(약 576조 원)에 달한다. 한국은 경제 규모가 50년 전 30억 달러(국내총생산)에서 1조3000억 달러(2013년)로 400배 가까이 커졌다. 하지만 일본에 비하면 여전히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일본은 고대 이래로 한국에서 배워 가던 나라였지만 한국이 배워 오는 나라로 위치가 바뀐 지 꽤 오래됐다. 아베 신조 총리가 집권한 후 일본은 이웃나라에 대해 과거사 왜곡과 퇴행적 행동을 되풀이하고 있다. 국익을 위해 협력할 것은 해야겠으나 식민지의 아픈 과거를 잊을 수는 없다. 요리조리 사죄 안 하고 넘어가려는 일본을 이기는 길은 일본보다 잘사는 것, 일본보다 센 나라가 되는 거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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