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 대기업 순환출자 해소때 경영권 빈틈 노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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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래 前공정위장이 본 ‘엘리엇 사태’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22일 최근 벌어진 엘리엇 사태와 관련해 한국 기업들의 적극적인 경영권 방어 수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22일 최근 벌어진 엘리엇 사태와 관련해 한국 기업들의 적극적인 경영권 방어 수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한국은 더이상 헤지펀드의 경영권 위협으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기업들이 지배구조 개선 노력을 하는 동시에 경영권 방어를 위한 법적인 장치를 보완해야 합니다.”

최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에 제동을 걸고 있는 것과 관련해 박근혜 정부의 첫 번째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노대래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석좌교수는 2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노 전 위원장은 한국 대기업들이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경영권 위협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지배구조의 선진화나 경제민주화를 위해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는 불가피하다”면서도 “그동안 계열사 출자를 통해서 우호지분을 확보해 왔던 그룹들은 출자구조를 바꿀 경우 경영권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외환위기 직후부터 대기업의 출자구조를 단순화해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데 주력해 왔다. 지난해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신규 순환출자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선 출자 내용 공개를 의무화한 것도 이런 차원에서다.

하지만 대기업 오너와 특수관계인의 지분(내부지분)이 낮거나 출자구조 개편과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 등 대수술을 할 경우 경영권 위협에 노출된다는 게 문제다. 노 전 위원장은 “지난해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면서 신규 순환출자 금지에 대한 여러 가지 예외를 뒀지만, 헤지펀드들이 국내 대기업집단의 지분 구조가 취약한 틈을 타서 지분 매집에 나서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그동안 경영권 방어 수단에 대해 얘기하면 ‘대기업들의 엄살이다’, ‘평균 내부지분이 50% 이상으로 높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등의 목소리가 컸던 게 사실”이라며 “헤지펀드들은 빈틈 있는 기업을 공격하기 때문에 평균 개념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헤지펀드가 외부 견제 기능을 통해 경영의 민주화와 투명화를 유도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하지만 엘리엇 사태에서 보듯 정상적인 지배구조 개편을 방해하고, 경영 개입을 통해 소액주주의 이익까지 침해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는 게 노 전 위원장의 시각이다. 그는 “엘리엇과 같은 헤지펀드들의 경영권 위협이 계속되면 회사의 경영전략이 흔들리고 의사결정이 더뎌진다”며 “자칫 국내 기업들의 투자 위축이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에 제대로 된 경영권 보호 수단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을 우려했다. 주식 종류별로 의결권 수에 차등을 두는 ‘차등의결권’의 경우 미국, 일본, 유럽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28개국이 허용하고 있지만 한국은 금지하고 있다. 적대적 기업 인수의 비용을 높이는 ‘황금낙하산’ 제도는 허용됐지만 정관 변경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미 외국인 지분이 높은 기업들은 활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이 도입돼도 마찬가지 문제가 발생할 것이란 지적이다.

노 전 위원장은 “경영권 위협을 우려해 기업들이 지배구조 개선을 기피한다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 경제가 떠안게 된다”며 “순환출자 해소와 그 과정에서 생기는 경영권 위협 간의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헤지펀드#대기업#노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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