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시선]통일역군이 될 그날을 준비하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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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경 ㈔새삶 대표 약사 탈북 여성 박사 2호
이혜경 ㈔새삶 대표 약사 탈북 여성 박사 2호
1990년대 후반부터 개시된 엄혹한 북한의 ‘고난의 행군’이 낳은 탈북민들이 근 20년이라는 시간 속에 한국 사회 곳곳에 자리 잡았다. 그동안 한국에 들어온 탈북민 중에는 각 분야 박사도 15명이 배출됐고 한의원장도 10여 명이 나오는 등 전문가도 두 자릿수로 부쩍 늘어났다. 외진 섬마을의 이장과 광역시의 동장에 그치지 않고 나라의 국사를 의논하는 여당 국회의원까지 탄생한 일도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왜 우리 사회에서 탈북민 출신 이장에서 국회의원까지 탄생했을까. 나는 이들이 사회주의 북한과 자본주의 남한의 판이한 두 제도를 경험해 민족의 숙원인 통일 한국을 지향하는 우리 사회에서 간과할 수 없는 ‘통일 인적자원’의 측면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대미문의 3대 독재 세습을 완성한 북한에서 총성과 기근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탈북민들은 열악한 현실을 경험한 뒤 자유와 풍요에 혼이 나갈 것 같은 한국 사회와 생활 속에 녹아있다. 하지만 어제나 오늘이나 자나 깨나 고향 산천에 대한 향수는 떨칠 수 없는 천륜(天倫)과도 같다. 그리하여 나는 통일 후 저 불모의 북한 땅을 개건하고 개발, 발전시키고 싶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있다.

북한에 태와 청춘기를 묻은 나는 한국살이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한국 생활 10여 년 사이에 자살 충동을 수회 겪었다. 탈북민에 대한 사회의 편견, 자본주의 경쟁 바다 속의 연약한 생명, 그럼에도 살아 숨쉬어야만 하는 가련함, 시간의 갈피갈피에서 어느 한 순간도 수월한 고비와 지경이 허용 안 되는 사회와 현실이었다. 탈북민으로 고진감래를 경험한 선배로서 힘들어하는 탈북민 후배들에게 나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함께 울고 웃으며 시련의 고비 고비들을 넘기고 싶다. 그리하여 다가오는 통일 한국의 유용한 인적자원이 돼 북한 땅 고향을 개건하는 매니저가 되고 싶은, 자그마하지만 강한 욕구가 늘 나를 일어서고 분발하게 한다.

그렇기에 “자활이 우선”이라고 본 남한 선배의 주장(5월 20일자 A28면 ‘탈북민 통일기둥論, 자활이 우선이다’)의 맥락은 탈북민으로서 통일역군임을 자임하는 내게 채찍인 동시에 가슴 아픈 상처로도 안겨온다.

이혜경 ㈔새삶 대표 약사 탈북 여성 박사 2호
#통일역군#탈북민#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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