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한줄]‘그들은 결혼해서 영원히 행복하게…’ 정말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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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성욕의 충족으로 대체되었고 우리는 정신적인 유대라고는 없는 그저 가능한 많은 쾌락을 서로를 통해 얻어내려고만 하는 완벽한 이기주의자가 된 것입니다. ―크로이체르소나타(레프톨스토이·펭귄클래식·2008년) 》

‘그들은 결혼해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동화에서는 남녀 주인공의 결혼으로 행복한 결말을 맺는 경우가 많다. 이 세계에서 결혼은 행복의 시작이자 완성이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결혼생활이 잔인한 결말로 끝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자신의 중편소설을 통해 결혼의 환상을 여지없이 파괴해 버린다.

1인칭 화자인 ‘나’는 밤낮 달리는 어느 기차 객실에서 승객들과 사랑의 본질을 논하다 머리가 희끗한 한 남성을 만난다. 말동무가 된 그는 나에게 자신의 충격적인 과거를 털어놓는다. 포즈드니셰프는 몇 년 전 한 여인의 체취, 머릿결, 옷매무시에 흠뻑 빠져들어 결혼했다. 실제로는 아내의 육체적 매력에 이끌렸지만 그는 ‘사랑’이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결혼 후 정신적 사랑이 식어버린 부부는 불화와 권태를 겪지만 그때마다 육체적 사랑으로 하루하루 연명해 간다.

서로의 적대심이 깊어갈 무렵 그들 앞에 트루하쳅스키란 바이올린 연주자가 나타난다. 피아노를 칠 줄 알았던 아내는 그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일명 크로이체르 소나타)을 협주하고 남편은 질투와 부러움이 뒤섞인 미묘한 감정으로 쳐다본다. 얼마 뒤 지방으로 출장 갔던 남편은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집으로 되돌아온다. 새벽 1시 집에 도착한 남편은 아내가 바이올린 연주자와 식사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본다. 광기에 휩싸인 그는 아내를 칼로 무참히 살해한다.

아마도 대다수 독자들은 결혼을 부정적으로 그린 톨스토이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남녀가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기르며 가정을 가꾸는 일은 숭고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이는 가정을 만든 남녀가 서로를 아끼고 노력할 때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결혼 생활은 얼마든지 잔혹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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