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강국]클린에너지와 첨단기술의 만남, 에너지 자립섬 만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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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진도 외딴섬 가사도, 전력 80% 신재생에너지로 충당
한국전력, 전기생산·저장·소비 자체해결 실험 결실

전남 진도군 조도면의 외딴섬 가사도. 진도읍의 여객선 항구 쉬미항에서 하루 한 편뿐인 배를 타고 1시간 30분을 가야 도착할 수 있는 벽지 마을이다.

인구 286명의 이곳 섬 마을에서는 요즘 한국의 에너지산업을 뒤흔들 ‘조용한’ 실험이 한창이다. 국내 최초로 전기 생산-저장-소비를 자체적으로 하는 한국전력의 ‘에너지 자립섬’ 시범사업이 그것이다. 섬에서 쓰는 전력의 80%는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장마철이나 바람이 불지 않는 시기에는 저장해 놓은 전력을 쓴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이곳에서 시험 중인 ‘독립형 마이크로그리드(MG) 시스템’은 정부와 에너지업계가 차세대 먹거리로 육성 중인 대표적인 에너지 신(新)산업이다. 이미 올 3월 캐나다와 133억 원 규모의 MG 구축 기술 수출에 합의하는 등 북미 시장 진출도 가시화되고 있다.

과거 공상과학(SF)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에너지 신산업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 사용은 물론이고 원자력 에너지 생산 확대도 한계에 다다르면서, 에너지 신산업으로 돌파구를 마련해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안보 구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다.

‘에너지 자립섬’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전남 진도군 가사도.
‘에너지 자립섬’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전남 진도군 가사도.
“에너지 공급 무한정 확대 불가능”… 수요관리로 돌파

지난 수십 년간 에너지 분야의 화두는 ‘공급 확대’를 통한 양적 성장이었다. 석유와 석탄, 가스를 값싸게 많이 수입하고 전기를 대량으로 생산해 늘어나는 수요를 뒷받침하는 게 사실상의 유일한 목표였다.

하지만 이 같은 양적 확대 기조는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을 통한 환경 보호라는 국제적 목표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화석 연료 소비는 더이상 늘리기 어렵다. 유일한 대안으로 꼽혀 온 원자력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 안전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확대 정책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최근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짜면서 화력발전 증설을 전면 중단하고 원자력발전소 신규 건설도 2기로 한정한 게 이런 이유에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분야가 바로 ‘에너지 신산업’이다. 정보통신기술(ICT) 등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에너지의 이용 효율을 높이고 수요 팽창을 억제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에너지 절약이 에어컨을 끄고 더위를 참는 ‘고전적 방식’이었다면 에너지 신산업은 에너지 효율 향상을 새로운 사업으로 육성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일자리 창출까지 도모한다는 전략이다.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리는 것도 대표적인 에너지 신산업 정책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15년 뒤인 2030년에 신재생에너지가 석탄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전력 공급원이 될 것이라고 최근 전망했다.

가사도에서 진행 중인 ‘에너지 자립섬’ 사업은 대표적인 에너지 신산업 프로젝트다. 그동안 디젤 발전기로 전기를 생산했던 탓에 한전은 가사도에서만 연간 7억 원의 적자를 냈다. 하지만 MG 시스템을 구축한 이후 6개월간 1억5000만 원의 유류비를 아끼는 효과를 냈다. 이 계산대로라면 16년 뒤에는 가사도에 투입한 투자비 회수가 가능하다.

‘에너지 자립섬’ 사업에는 다양한 분야의 에너지 신산업이 접목됐다. 태양광, 풍력 등을 통한 신재생에너지 생산은 물론이고 남는 전기를 저장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에너지 생산 및 소비를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에너지관리시스템(EMS) 등이 그것이다. 한전 관계자는 “가사도의 운영 노하우를 활용하고 국내 관련 기업들과 협력해 전 세계적으로 급성장 중인 해외 에너지 신산업 시장에 적극 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에너지 전문가들이 한국전력의 스마트그리드 사업 현황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해외 에너지 전문가들이 한국전력의 스마트그리드 사업 현황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아낀 전기 되팔고 발전소 온배수는 재활용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력 수요관리 △태양광 렌털사업 △화력발전 온배수열 활용 △스마트그리드 확산 등 8개 사업모델을 대표적인 에너지 신산업 분야로 선정해 집중 육성하고 있다.

전력 수요관리란 공장, 빌딩 등에서 아낀 전기를 모아 전력시장에 판매하는 사업이다. 전력 단위인 메가와트(Megawatt)와 네거티브(Negative)를 합성해 ‘네가와트 사업’으로도 부른다. 이제까지는 여름, 겨울 등 전력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때에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공장 등에 일일이 부탁해 가동을 중단시키고, 그 대가로 보조금을 주는 방식으로 수요관리를 했다.

하지만 전력 수요관리 사업은 수요관리 회사가 전기를 아낄 소비자(공장, 빌딩 등)와 전력 감축 계약을 맺은 뒤, 실제로 소비자가 목표를 달성하면 한전에서 받은 정산금을 지급한다. 2017년까지 천연가스(LNG) 화력발전소 4기에 해당하는 190만 kW 규모의 시장을 만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전기자동차 충전사업도 상용화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전기 주유소’ 격인 충전시설을 2017년까지 제주도에 3050개 등 전국에 3660기를 설치할 계획이다. 충전 사업자에게는 주차장, 충전기 설치용지 등을 지원하고 전기택시, 렌터카 등 전기차 서비스업체에 충전소를 개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한전은 현대자동차, KT 등과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했다.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온배수는 인근 농촌의 작물 생산에 활용된다. 지금까지는 발전소의 터빈 열을 식힌 뒤 나오는 온배수를 바다로 그냥 흘려보내다 보니, 주변 어장과 갯벌을 황폐화시킨다는 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잇따랐다. 온배수를 활용하면 인근 농촌에서는 비닐하우스 등을 난방하기 위해 비싼 요금의 전력을 소비할 필요가 없고, 발전소는 처치 곤란한 온배수를 활용하는 1석 2조의 효과가 있다.

장밋빛 전망이 잇따라 나오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특히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안팎에 머무는 저유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에너지 효율을 높여야 한다는 유인이 떨어져 에너지 신산업 성장이 더뎌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에너지의 96%를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이 에너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대안은 에너지 신산업밖에 없다”며 “저유가로 투자비용이 낮아진 지금이 신재생에너지 등에 투자할 수 있는 적기”라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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