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닮고 싶은 사람과 함께한 바다 위에서의 1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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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작가 수업/아널드 새뮤얼슨 지음/백정국 옮김/
336쪽·1만5000원·문학동네

1934년 스물둘이던 저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횡단여행’을 읽고 집을 나선다. 그는 미국 중북부 미니애폴리스에서 최남단 키웨스트까지 3200km를 이동했다. 대공황 시절 가진 돈도 없어 부랑자처럼 차편을 구걸해 이동해야 했다. 이유는 딱 하나. 숭배하는 작가에게 단 몇 분이라도 글쓰기에 관한 조언이 듣고 싶어서였다.

거지꼴로 무작정 헤밍웨이의 집에 찾아갔지만 헤밍웨이는 예상과 달리 친절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절대로 한 번에 너무 많이 쓰지 말라는 것” “무얼 쓰든 초고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 “절대로 훌륭한 작가인지 알 길 없는 살아있는 작가들과 경쟁하지 말라” 같은 조언을 들려줬다. 게다가 저자에게 깜짝 제안까지 했다. 자신의 낚싯배 필라호에서 재워줄 테니 뱃일을 도와달라고.

저자는 1년간 헤밍웨이와 함께 필라호를 타고 키웨스트와 쿠바 아바나를 누비며 받은 특별한 작가 수업을 생생히 기록했다. 그는 헤밍웨이가 인정한 유일한 문하생이다. 책을 읽으며, 겉은 무뚝뚝하지만 속은 따뜻한 ‘상남자’ 헤밍웨이를 만나 반갑다. 헤밍웨이는 저자의 원고를 연필로 일일이 수정해 다듬어주고, 작가가 되기 위한 내적 동기를 이끌어 준다. 자신과의 경험을 글로 써서 상업적으로 팔아도 좋다는 통 큰 배포도 보여준다.

헤밍웨이 소설의 팬이라면 소설 뒷이야기가 궁금할 터. 어느 날 헤밍웨이와 저자 앞에 바다가 검게 변할 정도로 수많은 쇠돌고래 떼가 나타나 물 위를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오른다. 헤밍웨이는 “묘사가 불가능해. 이런 감격은 세상의 어떤 작가라도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없어”라며 감탄했던 장관을 훗날 ‘노인과 바다’ 속 어부의 꿈속 장면으로 묘사한다.

유명 작가의 표절로 시끄러운 한국 문단이 귀담아들어야 할 이야기도 있다. 헤밍웨이의 말이다. “좋은 작품이란 작품은 몽땅 읽어둬야 해. 그래야 이제껏 어떤 것들이 쓰였는지 알 수 있을 테니.(중략) 그리고 남을 흉내 내지 말게.”

저자는 작가 수업을 받고도 널리 알려진 소설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바다 위에서의 1년을 멋진 기록으로 남겼다. 닮고 싶은 남자와 물보라 일으키는 고래를 사냥하고, 작가 수업까지 받았다니, 같은 남자로서 어찌나 부러운지…. 읽고 또 읽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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