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스케치]깐깐한 스크린 코치… “게임같네” 얕보다 땀 뻘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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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스포츠 전성시대

월드짐 일산 센터에서 이연정 트레이너가 ‘버추얼 짐’ 시연에 참가해 쇼트트랙 기본자세를 취하고 있다. 버추얼 짐은 기본적으로 ‘게임’이지만 자세가 조금만 어긋나도 교정 판정을 하기 때문에 정확한 자세로 운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고양=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월드짐 일산 센터에서 이연정 트레이너가 ‘버추얼 짐’ 시연에 참가해 쇼트트랙 기본자세를 취하고 있다. 버추얼 짐은 기본적으로 ‘게임’이지만 자세가 조금만 어긋나도 교정 판정을 하기 때문에 정확한 자세로 운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고양=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한국인들의 ‘스크린 사랑’은 유별나다. 통계청의 ‘e나라지표’를 보면 집(가구 수)과 사람보다 TV와 휴대전화가 더 많다. 가구당 PC 보급률도 78.8%나 된다. 그만큼 일상생활에서 스크린을 쳐다보고 있는 시간도 길다. 이제는 아예 운동도 스크린을 보며 할 정도다. 스크린(가상) 스포츠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예전에는 스크린 스포츠라고 하면 스크린 골프를 떠올리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이제 사격, 승마, 야구, 양궁, 피트니스 등으로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그 덕에 2007년 1000억 원 수준이던 국내 가상스포츠 시장 규모는 2013년 1조5000억 원 정도로 커졌다. 2017년에는 5조 원 안팎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예상이다. 이런 전망은 한국인들이 운동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재미있는 결과다. 문화체육관광부 조사 결과를 보면 정기적으로 운동하는 한국인은 35.9%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인이 이렇게 ‘스크린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스크린 골프 사업이 없었다면 스크린 스포츠 시장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스크린 골프는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스크린 골프 관련 기술이 쌓이면서 현재는 실제 필드 위 플레이를 95% 이상 똑같이 구현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동아일보DB
스크린 골프 사업이 없었다면 스크린 스포츠 시장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스크린 골프는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스크린 골프 관련 기술이 쌓이면서 현재는 실제 필드 위 플레이를 95% 이상 똑같이 구현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동아일보DB
노래방 그리고 스크린 골프장

여전히 스크린 스포츠 시장에서 ‘덩치’가 가장 큰 스크린 골프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원래 스크린 골프 장비는 1990년대 미국에서 연습용으로 들여온 게 시초. 그러다 가격이 싸고 접근성이 뛰어난 장점 덕에 빠르게 시장이 커졌다. 2008년 600여 개였던 스크린 골프장은 지난해 약 5500개로 늘었다.

이기광 국민대 교수(체육학)는 한국인 특유의 ‘방 문화’ 선호 현상 때문에 스크린 골프 시장이 급성장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스크린 골프장은 노래방의 보완재 형태로 일반인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스크린 골프장에서 술도 마시고 골프도 치는 게 일반적이지 않았느냐”면서 “건설 경기 침체로 임대 사업이 잘되지 않았던 것도 스크린 골프장이 늘어나는 한 원인이 됐다. 빈자리만 있으면 스크린 골프장이 들어설 정도였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골프라는 종목이 갖는 독특한 위상 때문에 스크린 골프가 인기를 끌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에서 골프는 그저 공을 치면서 자연을 즐기는 걸 넘어 ‘접대’가 필요한 스포츠다. 거꾸로 내기에서 이겨야 할 때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이 라운딩할 코스를 미리 둘러본다는 취지에서 스크린 골프장을 찾는 주말 골퍼들도 적지 않다.

여기에 한국의 정보기술(IT) 수준이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스크린 골프 업체 골프존 관계자는 “프로골퍼 30명을 상대로 신뢰도 테스트를 한 결과 실제 필드 상황을 95.5%까지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골프뿐 아니라 다른 종목도 스크린으로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빠른 편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가상 스포츠 관련 특허 출원은 2004∼2008년 222건에서 2009∼2013년 538건으로 늘어났다.

빨리 그리고 가까이

아무래도 젊은 세대가 어르신들보다 IT와 친숙하다. 이 때문에 스크린 스포츠 역시 젊은 세대 중심으로 시장이 커지고 있다. 골프도 그렇다. 많은 골프장이 젊은 골퍼 감소에 고민하고 있는 것과 달리 스크린 골프장을 찾는 20, 30대는 여전하다. 이 중에는 필드에 나가지 않고 스크린 골프만 즐기는 이들도 있지만, 스크린 골프를 발판 삼아 ‘머리를 올린’ 사례도 적지 않다.

직장인 원광희 씨(34)는 “친구들하고 술 한잔 하고 나서 스크린 골프장을 처음 찾았다. 케이블TV에서 중계하던 걸 봐서 호기심은 있던 상태였다. 골프를 하나도 몰랐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있었다”며 “처음에는 저렴한 스크린 골프로 만족했는데, 결국 돈을 들여 연습장을 찾게 되고, 이제 필드에 나가는 날만 기다리게 됐다”며 웃었다.

스크린 승마는 다이어트에 특히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고객이 증가하고 있다. 말을 1시간 동안 탈 때 소모하는 열량은 약 3000Cal로 수영을 하거나 자전거를 탈 때보다 2∼3배 이상 높다. 승마는 아직도 일반인이 즐기기에는 가격이 비싼 데다 도심 외곽으로 나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주변에 스크린 승마장만 있으면 그럴 필요가 없다. 실제로 말을 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상 위험도 적다.

점점 현실감이 느껴지는 것도 인기를 끄는 요인이다. 스크린 승마장 초창기에는 단순하게 상하 운동을 반복하는 로봇 말을 탔지만 이제는 스크린에 나타나는 지형에 따라 엉덩이를 튕겨 움직여 줄 정도로 기술이 발달했다. 현재 약 시속 60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는데 고삐를 당기면 말이 달리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실제 승마처럼 평보, 속보, 구보 등 100가지 동작을 구사하는 것도 가능하다. “손맛이 실전보다 더 좋다”는 게 실제 승마하고 비교해 본 이들의 평가다.

스크린 야구는 동전을 넣고 즐기던 ‘타격 연습장’이 진화한 형태다. 그물에 타구가 맞는 속도를 바탕으로 타격 결과를 표시하던 것을 넘어 레이저 센서가 타구 움직임을 100만분의 1초까지 정밀하게 측정하고 실제 야구처럼 주자 움직임도 포착해 점수까지 나온다.

사회인 야구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원호 씨(29)는 “스크린 야구장에 처음 갔을 때 컴퓨터 게임처럼 야수들이 직접 수비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기대 이상으로 그럴듯해 놀랐다. 배트도 좋은 걸 가져다 놓기 때문에 기존의 타격 연습장과는 비교가 안 된다. 변화구도 예술”이라며 “단, 투구 속도는 비슷한데 투구 거리가 좀 짧은 게 단점이다. 그만큼 타격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노인을 위한 ‘스크린 스포츠 나라’는 있다.


그렇다고 스크린 스포츠가 젊은이들의 전유물인 건 아니다. 어르신들을 위한 스크린 스포츠 시장도 점점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스크린 게이트볼이 대표적이다. 게이트볼은 T자형 스틱으로 볼을 움직여 게이트 3곳을 순서대로 통과한 뒤 골에 맞혀 점수를 올리는 구기 종목. 해마다 대통령기 전국 노인게이트볼대회가 열릴 정도로 어르신들에게는 골프 못잖은 인기 스포츠다. 스크린 게이트볼 장비를 쓰면 운동장에서 게이트볼을 즐길 때와 거의 유사한 환경에서 공을 칠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온라인 게임도 가능하다. 연습 모드가 있어 초보자가 기술을 익히는 데도 도움이 된다.

스크린 게이트볼 장치를 만들고 있는 P업체 관계자는 “게이트볼을 배우려는 초보 어르신들이 특히 스크린 게이트볼을 좋아하신다. 어린이들도 호기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게이트볼 보급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며 “현재 전국 노인복지센터 등을 중심으로 보급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다. 앞으로 온라인 토너먼트 대회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는 게임을 하려면 직접 몸을 움직여야 하는 ‘키네틱(kinetic) 게임’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형태의 게임을 처음 선보인 ‘닌텐도 위’를 시작으로 ‘소니 플레이트이션 무브’, ‘마이크로소프트(MS) XBOX360 키넥트’ 등이 시장에서 3파전을 벌이고 있다. TV하고 연결하기만 하면 집 안에서 맨손으로 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주부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편이다.

고등학생 자녀 두 명을 둔 이필순 씨(47)는 “집안일을 끝내 놓고 볼링, 배드민턴, 탁구 같은 게임을 하곤 한다. 요즘은 TV 화면이 크기 때문에 실감나게 운동할 수 있다. 하루에 30분가량 하는데 운동 효과가 느껴진다”며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종목을 자기 운동량에 맞게 조금씩 즐길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해외 연구 결과에 따르면 키네틱 게임은 특히 뇌중풍(뇌졸중)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월드짐 일산 센터에서 이연정 트레이너가 ‘버추얼 짐’에 들어 있는 ‘버피 테스트’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있다. 버추얼 짐은 버피 테스트를 비롯해 사이드 스텝, 원레그 사이드 스텝, 런지, 점프 스쿼트 등 5가지 운동을 기본동작으로 선택하고 있다. 고양=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월드짐 일산 센터에서 이연정 트레이너가 ‘버추얼 짐’에 들어 있는 ‘버피 테스트’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있다. 버추얼 짐은 버피 테스트를 비롯해 사이드 스텝, 원레그 사이드 스텝, 런지, 점프 스쿼트 등 5가지 운동을 기본동작으로 선택하고 있다. 고양=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키네틱 게임의 결정판 ‘가상 피트니스’

보통 컴퓨터 게임은 점수나 레벨로 유저(사용자) 실력을 측정한다. 하지만 ‘버추얼 짐’은 “생체나이가 두 살 젊어졌습니다” 같은 말로 이를 대신한다. 버추얼 짐은 피트니스 업체 월드짐이 기능성 게임 개발회사 블루클라우드와 함께 내놓은 스크린 스포츠형 게임이다. 생체나이는 허투루 매기는 게 아니다. 수십만 명의 △건강 이력 △생활 패턴 △근력 △심폐력 등 건강 데이터를 분석해 나온 결과다.

송인수 월드짐 아시아법인 대표는 “똑같이 턱걸이 20개를 해도 50대 직장인과 20대 대학생은 건강 수준이 차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 착안해 ‘빅데이터’ 활용을 떠올리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사용자가 자신의 또래 중 어느 정도 신체 능력을 보이는지 측정할 뿐만 아니라 개인 특성에 맞는 일대일 운동, 영양학 솔루션 등도 제공한다.

유저가 게임하는 법은 콘솔(가정용 게임기) 앞에서 몸을 움직이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 정확도는 수준이 다르다. 버추얼 짐은 위쪽에 있는 빔 프로젝터로 바닥에 움직여야 할 범위를 표시해 주고, 사용자의 움직임을 키네틱 동작 인식 센서로 파악해 전면에 있는 화면에 이를 반영한다. 이른바 ‘혼합 현실’ 기법이다. 이 기술을 활용해 게임 형태로 진행하는 버추얼 피트니스 시스템을 구축한 건 이 회사가 세계에서 처음이다. 피트니스 프로그램 자체는 NASM(National Academy of Sports Medicine), FMS(Functional Movement Screen) 등 공인 기관에서 인정받은 내용으로 꾸렸다.

그러면 운동은 얼마나 될까. 경기 고양시 일산지점에서 직접 시연에 나선 이연정 트레이너(27·여)는 “이렇게 땀이 많이 날 줄 몰랐다. 생각보다 힘들다”며 “운동 자체가 재미있게 느껴지기 때문에 처음 운동하는 사람에게 흥미를 유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고, 윤진화 트레이너(29)는 “재미있게 운동하면서도 내 수준을 정확하게 알 수 있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버추얼 짐은 정보기술과 빅데이터, 그리고 개인화(personalization)까지 완성한 스크린 스포츠의 종결판이라고 할 수 있다”고 자평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스크린 스포츠#스크린 골프장#버피 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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