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봉산 산행기]재미있는 말괄량이 같으면서 너무도 아름다운 ‘팔봉산’

  • 동아경제
  • 입력 2015년 6월 19일 17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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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산이라고 얕보다가는 큰 코 다칩니다. 절벽과 기암괴석, 암벽 등 있을 건 다 있는 재미있는 산입니다.”

하루 입장객 수를 제한하는 곰배령 예약에 실패하고 다시 고른 산은 강원도 홍천에 있는 팔봉산(八峰山)이다. 등산에 조예가 깊은 한 선배가 팔봉산을 추천하면서 위와 같은 설명을 곁들였다.

팔봉산은 이름에서 짐작하듯이 8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붙어 있다. 최고봉인 제2봉이 해발 327미터로 그리 높지 앉지만, 기암과 절벽 사이로 등산로가 나있고 로프에 의지해야할 만큼 급경사도 많아 지루할 틈이 없다.

일행 8명이 주말 오전 6시(6월 13일)에 서울 뚝섬주차장에 모였다. 모두 2대의 차량에 나눠 타고 팔봉산으로 출발한 시간은 오전 6시30분. 서울춘천고속도로를 거쳐 팔봉산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7시40분을 조금 넘었다. 고속도로에 차가 없어 막힘없이 달렸다. 무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 뒤 곧바로 등산로에 들어섰다.

오늘의 등반은 1봉에서 출발해 8봉까지 차례로 봉우리를 넘는 제1코스를 선택했다. 팔봉산에서 가장 긴 코스다. 안내판의 평균 등반시간은 대략 2시간30분이었지만, 모처럼 시간에 쫒기지 않고 전망을 즐기며 쉬엄쉬엄 오르기로 했다. 완주 목표 시간은 3시간.

팔봉산은 주차장에서 보면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킨다. 맑은 홍천강 너머로 고만고만한 여덟 개의 뾰족한 봉우리가 사이좋게 늘어서 있는데, 강과 잘 어우러져 계절마다 근사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멀리서 보기엔 언뜻 시골 마을의 작은 뒷동산 같이 만만해 보이기도 하지만, 1봉 초입부터 산세가 험하다. 전체 거리는 짧지만 경사도는 어지간한 큰 산 못지않다. 헉헉대며 1봉에 오르자 봉우리가 주변의 소나무와 어우러져 잘 다듬어 놓은 하나의 수석을 닮았다.

1봉을 지나 2봉에 다다르면 정상에 작은 당집이 있다. 바로 삼부인당인데, 전해오는 얘기로는 삼부인신(三婦人神)은 시어미니 이(李)씨, 딸 김(金)씨, 며느리 홍(洪)씨 신(神)을 지칭한다. 이씨 부인은 마음이 인자했고, 김씨 부인은 마음이 더욱 인자했는데, 홍씨 부인은 너그럽지 못했다. 그래서 당굿을 할 때 이씨가 강신하면 풍년, 김씨가 강신하면 대풍이 드는데, 홍씨가 내리면 흉년이 들었다고 한다.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굿을 할 때마다 김씨 부인신이 내려주기를 빌었다. 지금도 등산로와 붙어 있는 당집에는 항상 촛불과 향이 켜있고 재단에는 재물이 정갈하게 놓여져 있다. 지나는 등산객들이 두 손 모아 삼부인신에게 복을 비는 모습은 언제라도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3봉을 지나 4봉에 오르기 전 하늘로 향한 작은 구멍 같은 굴이 있다. 옆으로 로프 등산로가 개설되기 전까지 이 굴은 봉우리로 가기 위한 유일한 통로였다. 따라서 이 굴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데 아래에서 보면 ‘과연 성인이 저 작은 굴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좁아 보였다. 일행 8명 중 3명만이 굴에 도전했다. 먼저 기자가 출발했다. 굴에 다가갈수록 더욱 좁아져 나중에는 구멍이 A4용지 1장 크기만큼 작게 보인다. ‘굴에 끼어서 오가도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함께 엎드린 자세로 도전했는데, 아무리 발버둥쳐도 혼자서 통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어깨가 바위틈에 끼이고 발을 디딜 곳도 없었다. 결국 일행이 손을 잡아줘 간신히 굴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일행들은 너무도 싱겁게 굴을 통과하는 것 아니겠나. 한 사람은 키가 180cm가 넘고 체중도 90kg이나 나가는 건장한 체격인데도 말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상한 것이 엎드리면 아무리 작은 사람도 혼자서 통과하기 힘들지만, 하늘을 향해 드러누운 자세로 몸을 들이밀면 어지간히 크고 뚱뚱한 사람도 쉽게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마치 산모가 아이를 낳는 형상과 같다 하여 ‘해산굴’이라는 이름이 붙어졌다. 이 바위는 일명 자식(아들)바위라고도 하는데 아들을 못 얻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기도를 하면 자식을 얻는다고 한다. 또한 장수굴이라고도 불리는데 한 번 통과할 때마다 10년이 젊어진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4, 5, 6봉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있어 로프를 잡고 오르내려야 한다. 등산로는 험하지만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경치가 아름답고, 발아래 굽이치며 흐르는 홍천강도 너무나 보기 좋다. 그러면서 여산(女山)답게 풍성하고 따뜻한 기운이 넘쳐 등산객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웃고 떠들며 봉우리를 넘는 사이에 어느덧 7봉에 이르렀다. 일행 중 한 명이 봉우리를 넘을 때마다 나이를 10년씩 먹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7봉은 70세란다. 방금 1봉에서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7봉까지 온 것이다. 인생도 이처럼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고 생각하니, 슬며시 어깨가 처졌다.

7봉에는 부처바위가 있는데 세파에 찌든 중생들이 이곳에서 정성을 드리면 잡념을 털어내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산할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팔봉산은 오르락내리락 경사가 심하고 험하지만, 전체적으로 코스가 짧아 등반이 수월했다. 쉬엄쉬엄 봉우리는 넘다보면 어느새 8봉에 다다른다. 8봉의 평평한 바위에 앉아 잠깐 땀을 식힌 뒤 하산 길에 올랐다. 급경사를 10여분 내려오자 바로 홍천강변에 도착했다. 강 옆으로 난 길을 따라 10여분 올라가면 처음 출발했던 등산로 입구와 만난다. 하지만 우리는 가뭄으로 물이 준 홍천강을 바로 건너 주차장으로 가기로 했다. 깊은 곳이 수심 50~60cm이고, 폭은 30여m에 불과한 강을 가로질러 반대편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때 시간은 낮 12시를 지나고 있었다. 총 등산시간은 3시간 남짓. 중간에 멈춰서 경치를 구경하고 간식을 먹으며 느릿느릿 걸어도 이 정도 시간이면 충분했다. 만약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면 1시간30~40분이면 1~8봉까지 완주할 것으로 생각된다.
팔봉산 등산로 입구에는 보기 민망한 남근목과 남근석이 나란히 서있고 그 옆으로 소나무 장승이 있다. 왜 이런 민망한 물건을 산 입구에 세워뒀을까.

팔봉산은 낮지만 험한 암벽에 경사가 심해 곳곳에 추락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실제로 90년대까지 추락사고가 빈번해 등산객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던 한 노인이 산의 음기가 너무 세서 사고가 자주 발생하니 이를 다스려 보라고 권했다. 주민들과 관리사무소는 힘을 합쳐 남근목과 남근석을 입구에 세워 음기를 중화시키고, 장승으로는 돌아가신 혼령을 달래니 거짓말처럼 사고가 줄었다고 한다.

이날 오전 비가 살짝 뿌리고 구름이 햇빛을 가려줘 등산하기에 너무 좋은 날씨였다. 최대한 가볍게 옷을 입었는데, 여름 등산복은 땀을 잘 배출하고 몸에 달라붙지 않는 것을 골라야 한다. 너무 두꺼우면 땀을 많이 흘려 탈수 우려가 있다. 다만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기온이 떨어지고, 항상 변화무쌍한 산의 날씨에 대비해 얇은 방풍 재킷을 준비하는 것이 필수다. 이날은 얇은 반바지에 메시 소재 반팔티셔츠를 입고, 재킷은 배낭에 넣었다.

바위가 많은 산을 오를 때 무엇보다 중요한 장비는 등산화다. 돌에 부딪혀도 발을 충분히 보호하는 단단한 것이 좋다. 하지만 이날은 거꾸로 부드러운 것을 선택했다. 산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인데, 바위산을 생각하면 충격을 막아주는 딱딱한 것이 좋지만, 코스가 짧고 강물에도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전천후 신발을 신었다. 바로 워터슈즈 ‘메가벤트’다.

메가벤트는 중창인 미드솔에 물 빠짐 구멍이 있어 배수가 잘 되고, 바닥 창의 접지가 좋아 가벼운 등산은 물론 계곡 트레킹, 휴가철 물놀이 등에도 적합하다. 또한 바닥 안창의 수많은 바람구멍인 벤트(Vent) 홀이 통풍 효과를 발휘해 여름철 아스팔트로 덮인 뜨거운 도심에서 일상화로 활용할 수도 있다. 신발 갑피도 메시 소재로 만들어져 바람이 잘 통한다. 이 신발은 트래킹이나 가벼운 산행에 적합한데, 물 속을 거닐다가 바로 물 밖으로 나와 트레킹, 경등산 등을 즐길 수 있다.
티셔츠는 자외선을 차단하고 땀을 잘 배출해야 한다. 또한 땀이나 물에 젖어도 툭툭 털어 입으면 금방 마르는 속건과 차가운 느낌의 냉감 기능을 갖춘 것이 대세다. 이날 입은 ‘오스텐슨 캐년 크루’는 옴니프리즈 제로를 적용한 기능성 제품이다. 옷감에 있는 수많은 블루링은 땀과 수분을 흡수하면서 동시에 체온을 내려준다. 특히 부위별로 통풍·통기성을 강화한 벤트 기능을 갖추고, 자외선을 차단하는 옴니쉐이드를 적용해 여름철 산행에 적합하다. 겨드랑이 안쪽 봉제선에는 데오드란트 테이프를 붙여 땀 냄새를 막아준다. 모두 컬럼비아 제품이다.

홍천강을 건너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정확히 12시10분이다. 이날 등산은 역대로 가장 느리게 걷고 가장 많이 쉬었다. 모두들 아직 기운이 쌩쌩하고, 뭔가 미련이 남는 듯한 표정이다.

“벌써 내려왔네요. 뭔가 좀 싱겁지 않아요?”, “그럼 한 번 더 올라갔다 올까?”
“아니요. 그건 아니고요. 다음에 좀 더 센 산을 가요. 그래야 땀도 제대로 흘리고 스트레스도 확 풀죠.”

몇 마디 대화가 오가면서 얼떨결에 다음 산행 목표가 설악산으로 정해졌다. 벌써부터 험악한 공룡능선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땀으로 범벅돼 일그러진 동료들의 표정이 그려진다. ‘아! 뜨거운 여름에 공룡능선이라니, 초보자들이 많은데 과연 가능할까?’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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