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비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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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우리 사회를 얼어붙게 하고 있다. 예방법으로 손 씻기를 권장하고 있다. 비누로 손만 잘 씻어도 바이러스의 99%가 죽는다고 한다. 지나친 공포감에 휩싸일 일이 아니다.

그런데 비누의 어원은 뭘까. 일부에서는 한자어 ‘비루(飛陋)’로 보고 ‘더러움을 날린다’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근거가 없다. 조항범 충북대 교수는 “비누는 16세기 ‘순천김씨 묘출토간찰’에 ‘비노’라고 처음 보이는데, 여기서는 ‘조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사전에 비누의 옛말로 비노가 올라있고, 녹두나 팥 따위를 갈아서 만든 가루비누를 조두(조豆)라고 소개하고 있다.

요즘 것과 비슷한 비누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1653년 제주도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하멜에 의해서라고 한다. 17세기 중반이다. 그렇다면 하멜이 가져온 물건을 보고, 그전부터 우리가 쓰던 ‘비노’와 쓰임새가 비슷해서 ‘비노’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것이 나중에 비누가 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비누를 담는 조그만 갑을 ‘비누곽’ ‘비눗곽’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바른 표기는 비눗갑이다. ‘갑(匣)’은 ‘물건을 담는 작은 상자’를 뜻한다. 성냥갑 담뱃갑도 마찬가지다.

비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미끌미끌하다’ ‘미끌거리다’가 아닐까 싶다. 둘은 닮은꼴이지만 처지는 천양지차다. 우리 사전은 ‘미끌미끌’과 ‘미끌미끌하다’는 인정하면서도 ‘미끌거리다’는 북한에서 쓰는 말이라고 제쳐뒀다. 그 대신 ‘미끈거리다’를 쓰라고 한다.

물론 미끈거리다를 쓰는 이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미끈한 몸매’, ‘미끌거리는 다시마’처럼 ‘미끈’과 ‘미끌’을 구별해 쓰고 있다. 미끈은 ‘흠이나 거친 데가 없이 부드럽고 번드럽다’ ‘생김새가 멀쑥하고 훤칠하다’는 뜻으로, 미끌은 ‘미끄럽고 번드러워서 자꾸 밀리어 나가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사전에 올라있는 다른 예를 보더라도 미끌거리다를 인정하지 않는 걸 납득하기 힘들다.

‘출렁출렁하다’ ‘출렁거리다’, ‘하늘하늘하다’ ‘하늘거리다’, ‘한들한들하다’ ‘한들거리다’ 등은 모두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미끌거리다만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은 언중의 말 씀씀이와 동떨어진 처사다. 미끌거리다를 인정하는 게 미끈하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비누#메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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