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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국군포로 죽을때까지 강제노동… 현충원에 추념탑 세워 희생 기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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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국군포로 죽을때까지 강제노동… 현충원에 추념탑 세워 희생 기려야”

정성택기자 입력 2015-06-18 03:00수정 2015-06-1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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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복 귀환국군용사회장
“국군포로로 북한에 잡혀 있던 47년 가운데 37년을 광산에서 노예처럼 살았습니다.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다 매일 국군포로들이 죽어 나갔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유영복 귀환국군용사회장(85·사진)은 17일 북한에서 겪은 고통이 떠오르는 듯 이같이 말했다. 이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사단법인 물망초의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소’ 기자회견에서다.

유 회장은 6·25전쟁 막바지인 1953년 강원 김화지구 전투에서 포로로 붙잡혔다가 2000년 북한을 탈출했다. 북한은 처음에 국군포로가 8만 명이라고 했다가 막상 휴전 협상이 시작되자 5만 명이라고 말을 바꿨다. 한국 정부는 전쟁이 끝난 뒤 북한군 포로 7만5000여 명을 북한에 돌려보냈지만 돌아온 국군포로는 8343명에 그쳤다.


유 회장은 “6·25전쟁에서 많은 젊은 남성이 죽었기 때문에 북한은 휴전 후 폐허를 복구할 노동력이 부족했다”며 “전후 복구에 필수적이었던 석탄과 광석을 캘 노동력으로 쓰기 위해 국군포로를 강제 동원했다”고 전했다. 대외적으로 더이상 국군포로가 없다고 주장하던 북한은 당시 내무성 건설대에 1701∼1709부대를 만들어 국군포로를 집단 수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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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회장은 아연 등을 캐는 검덕광산에서 강제 노동을 했다. 북한은 검덕광산과 인근 용양광산에 국군포로 1000여 명을 투입했다고 한다. “지하 600m∼1km 깊이로 내려가 거리가 10∼20km 되는 막장에 들어가면 가만히 서 있어서도 땀이 났고 피부가 쓰렸다. 생산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거기서 먹고 자면서 일하다 보니 거의 매일 사람이 죽었다.”

그는 “미국은 죽어서 북한에 묻힌 미군 유해를 찾기 위해 그토록 노력하는데 한국 정부는 살아있는 국군포로에 대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며 “그들의 희생을 기릴 수 있도록 국립현충원에 국군포로 추념탑이라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망초는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귀환국군용사회, 인간성 회복운동 추진협의회와 함께 포로 송환을 규정한 제네바 협약 위반을 이유로 김정은을 ICC에 제소할 계획이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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