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러브 스테이지] 슬픔 빨아서 웃음 널었다…10주년 맞은 ‘빨래’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6월 18일 05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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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뮤지컬 빨래 10주년 특별공연이 끝난 후 배우들이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서민들의 고단한 삶과 사랑 이야기를 웃음과 귀에 친근한 음악으로 푼 빨래는 한국 소극장 창작뮤지컬의 신화로 불리는 작품이다
14일 뮤지컬 빨래 10주년 특별공연이 끝난 후 배우들이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서민들의 고단한 삶과 사랑 이야기를 웃음과 귀에 친근한 음악으로 푼 빨래는 한국 소극장 창작뮤지컬의 신화로 불리는 작품이다
■ 한국 창작뮤지컬의 신화 ‘빨래’

졸업공연 기획…오픈런 공연으로 10년
홍광호·임창정 등 거쳐 간 배우 123명
50만 관객 울고 웃으며 고단한 삶 달래


이름만 떠올려도 입가에 미소가 걸리는 작품이 있다. 좋기도 하지만 고마워서다. 이 작품을 보고 나면 삶이 주는 고통과 좌절을 버틸 수 있는 면역력이 솟아나는 기분이 든다. 마음의 근육에 힘이 붙는다.

뮤지컬 빨래가 14일 10주년 행사를 열었다. 지난 10년에 걸쳐 빨래에 출연했던 배우들 중 49명이 한 자리에 모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오랜 만에 만난 얼굴도 있지만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다. 하지만 같은 작품, 같은 배역을 맡았다는 인연에 모두들 10년 지기처럼 반가워했다. 왁자지껄, 유쾌한 빨래터 같았다.

빨래는 한국 소극장 창작뮤지컬의 신화로 불리는 작품이다. 아라비아의 모래사막처럼 척박한 국내 창작 뮤지컬 환경 속에서 10년 동안 줄기차게 무대에 올려질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기적이다. 신화다. 당연한 얘기지만 ‘오픈런 공연(폐막일을 정해놓지 않은 공연)’ 중 10주년을 맞은 한국 뮤지컬은 빨래가 최초다.

● 2005년 4월 첫 공연…“굉장한 작품이 나왔다” 입소문 파다

순박한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 ‘솔롱고’와 서점 비정규직 사원 ‘나영’이 고단한 서울살이를 견디며 소박한 사랑을 이뤄가는 이야기. 빨래의 탄생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빨래는 작가이자 연출가인 추민주씨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공연으로 기획한 작품이었다. 학생들의 졸업공연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완성도의 작품이었고, 결국 국립극장에서 기획한 ‘이성공감 2005’를 통해 정식으로 무대에 올려지게 됐다. 이게 2005년 4월14일의 일이다.

당시 5월1일까지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단 2주, 22회 공연되었음에도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굉장한 작품이 나왔다”는 입소문이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빨래는 이 해 제11회 한국뮤지컬대상 작사·극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둔다.

지금까지 빨래를 거쳐 간 배우는 123명이나 된다. 솔롱고가 22명, 나영은 20명이다. 50만여 명의 관객이 빨래를 보며 웃고 울었다. 영국 웨스트엔드에 진출해 월드액터가 된 홍광호, 가수 겸 배우 임창정도 솔롱고 출신이다. 홍광호가 부른 솔롱고의 명넘버 ‘참 예뻐요’는 뮤지컬 팬들에게 ‘필감(필수감상) 영상’으로 통한다.

빨래는 서민들의 구질구질하고 고단한 삶의 속살을 적당한 웃음과 적당한 아픔으로 풀어낸다. 중용의 도를 아는 작품이다. 어느 것 하나 과하거나 넘치지 않는다. 웃을 때 웃고 슬플 때 슬프지만, 묘하게도 웃으면서 슬프고 슬퍼하면서 웃게 되는 작품이 빨래다. 군데군데 유머로 기워 놓았지만 빨래 속의 현실은 틀림없는 진짜이자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눈을 감으면 정겨운 그림이 떠오른다. 몸 하나 눕히면 그만인 쪽방, 옥상 위에 널어놓은 색색의 빨래들, 악덕사장이 빵 타령을 끝없이 늘어놓는 서점, 객석까지 냄새가 풍겨오는 듯한 푸세식 화장실, 그리고 맥반석 오징어와 맥주.

기사를 쓰고 있자니 슬슬 빨래가 보고 싶어진다. 요즘 삶이 고단한가 보다. 팍팍해진 마음에 빨래표 비타민 한 알 투척할 때가 되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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