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왔어요” 박스 속에 몸숨겨 고급빌라 턴 2인조 절도범 덜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7일 16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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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저려왔다. 소변이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았지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꾹 참았다. 임모 씨(33)가 상자 안에서 몸을 웅크린 채 때를 기다린 지 한 시간 반이 흘렀다. 드디어 상자 밖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7층에 택배 배달 왔습니다.” 임 씨의 동료인 안모 씨(35)의 목소리였다. 이어 서울 강남의 모 고급빌라 현관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안 씨는 임 씨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들어왔어. 지금 엘리베이터야.” 7층 비상계단에 도착한 안 씨는 임 씨를 상자에서 꺼내주고는 먼저 빌라를 빠져나왔다. 임 씨가 범행 대상으로 정한 집에 들어가려는 순간 집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현관문 비밀번호까지 알고 있었지만 임 씨는 집주인이 외출할 때까지 비상계단에 숨어 있기로 했다.

빌라 밖으로 나가면 경비원에게 발각될 우려가 있어 임 씨는 용변도 해결하지 못하고 비상계단에서 하룻밤을 새웠다. 다음날 오전 10시경 집주인이 출근한 뒤 임 씨는 집으로 들어가 현금 30만 원을 챙겼다. 노력에 비해 성과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임 씨는 집주인의 돈이 더 있는지 찾아보기 위해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가 복병을 만났다. 방 안에서 잠을 자고 있던 집주인의 친구에게 발각된 것. “누구냐”고 묻는 친구에게 임 씨는 “심부름을 왔다”고 둘러대고 도망쳤지만 수상히 여긴 친구는 경찰에 신고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임 씨와 안 씨를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했다고 17일 밝혔다. 경찰은 빌라 주변 폐쇄회로(CC)TV를 토대로 임 씨의 도주로를 특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CCTV로 분석한 거리는 4km로 임 씨가 골목길로 숨어들거나 차량을 이용해 도주했기 때문에 주거지 파악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범행 한 달 전 쯤 ‘콜뛰기(사설택시) 영업’을 하는 임 씨에게 “집에서 물건을 가져와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경찰 관계자는 “콜 뛰기는 통상 유흥업소 종사자의 출퇴근에 이용됐지만 최근에는 영업 방식이 변질돼 일반 의뢰인의 개인 심부름을 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결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고급 빌라에 사는 피해자는 임 씨에게 심부름을 시키며 현관문 비밀번호까지 알려줬고, 임 씨는 이를 토대로 지인인 안 씨와 함께 범행을 계획했다.

임 씨 일당은 지난달 20일 안 씨를 택배기사로 위장시키고, 임 씨는 가로·세로 1m, 높이 1.5m 크기의 상자 안에 숨어 택배 배달로 위장해 빌라에 침입했다. 경찰 관계자는 “CCTV 영상에 범행 후 도망치는 임 씨의 모습은 포착됐는데 침입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아 수사 초기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빌라 엘리베이터 CCTV 영상을 돌려본 끝에 택배 기사로 위장한 안 씨가 상자와 대화를 하는 모습을 발견해 임 씨의 침입 방법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손가인 기자 ga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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