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 정착한 ‘꽃제비’ 탈북청년 “미국 사람은 고기만 먹는줄 알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7일 15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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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선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와 미국대표부 공동주최로 ‘피해자들의 목소리, 북한 인권 대화’라는 제목의 간담회가 있었다. 탈북자 조지프 김 씨(25·본명 김광진), 제이 조 씨(28), 김혜숙 씨(53)가 초청돼 북한 인권 참상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이들 중 16세 때 중국으로 탈북해, 17세 때 미국으로 들어온 김 씨만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 발언했다. 김 씨는 2013년 세계적 강연 행사인 테드(TED)에도 출연해 ‘북한에서 한 가정의 사랑받는 아들에서, 중국 길거리의 꽃제비(어린 노숙자)로, 그리고 미국의 평범한 청년으로’ 변화해온 극적인 인생을 영어로 20여 분 소개했다. 이 동영상은 140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

그런 김 씨가 273쪽 짜리 영어 책을 출간했다. 제목은 ‘같은 하늘 아래―북한의 기아(飢餓)에서 미국의 구원으로(Under the Same Sky-From Starvation in North Korea to Salvation in America)’. 한글이 아닌 영어로 먼저 출간된 최초의 탈북자 증언록이 아닐까 싶다.

김 씨는 아버지가 굶어 죽고, 어머니와 누나도 먹을 걸 찾아 뿔뿔이 흩어진 뒤 혼자 탈북했다. 그 후 자신의 처절한 삶을 지탱해준 사람들을 책에서 ‘닻(anchor)’이라고 표현했다. 중국의 한 교회에서 숨어 지내던 자신을 데려가 먹여주고 재워준 조선족 할머니, 중국 공안(公安)의 눈을 피해 자신을 미국 총영사관으로 데려가고 결국 미국행 비행기까지 타게 해준 미국의 대표적 북한인권단체 ‘링크(LiNK·Liberty in North Korea)’의 애드리언 씨, 그리고 미국 초기 정착을 도와준 흑인 수양부모 등. 그의 여러 닻 중 남한이나 남한 사람은 없었다.

김 씨가 처음 제대로 접한 남한 사람은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만난 한국 유학생이나 한국계 미국인들. 김 씨는 강연이나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 친구들은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지만, 남한 친구들은 내가 북한 출신이란 걸 (말투 등으로) 금세 알아챈다. 그래서 미국 친구들이 더 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에서 친구 사귀기가 가장 어려웠다. 하루는 초콜릿을 가지고 가서 급우들에게 나눠주며 ‘(이 과자 줄 테니) 나랑 친구해 줄 수 있어?’라고 물은 적도 있다. 북한에선 ‘먹을거리’를 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됐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인데 미국 친구들은 정말 황당해 했다”고 적었다. 이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기막힌 에피소드’는 미국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것 같다. 미국 사람은 고기만 먹는 줄 알고 중국을 떠나기 전 일부러 ‘마지막 야채’를 챙겨 먹은 일, 남자 허리둘레가 27인치밖에 안돼 미국 옷가게에선 맞는 옷을 찾지 못했던 일화 등….

김 씨는 그동안의 미국 생활에 대해 “점점 더 행복하지만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더 낯설다”고 했다. 그래서 “먹을 음식과 잠 잘 숙소만 있으면 만족했던 북한 생활의 단순함이 그리워질 때도 때때로 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김 씨는 미국인 논픽션 작가(스테판 탤티)와 함께 쓴 이 영어책을 통해 세상에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사람들은 북한에 대해 잘 몰라요. 핵무기, 독재, 공산주의, 김정은 정도를 떠올리죠.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빼뜨리죠. 그 안에 저 같은 사람들이 수천만 명 살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는 결국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사람이 살고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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