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원대 금융사기단 “회장님 구하자” 19명 릴레이 위증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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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법정 농락

거액의 투자모집 사기 혐의로 재판 중인 회장을 구명하기 위해 집단 위증을 벌인 유사수신업체 임원 19명이 한꺼번에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법정에서 회장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잡아뗐지만 충성을 맹세한 문자가 발견돼 덜미를 잡혔다.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부장 정진기)는 2013년 109억 원대 유사수신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뒤 ‘거짓 증인단’을 선발해 위증을 교사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위증교사 등)로 ‘금융하이마트’ 회장 최모 씨(52)를 구속 기소하고 위증에 가담한 회사 임원 등 19명을 재판에 넘겼다고 16일 밝혔다.

최 씨는 2012년부터 “우회 상장 예정인 회사에 투자하면 상장 후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로 소액 투자자들을 속여 109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2013년 기소됐다. 최 씨가 내세운 ‘바지 사장’ 김모 씨(52)는 징역 4년형이 확정됐지만 주범인 최 씨의 재판은 2년간 결론이 나지 않았다. 당초 검찰은 최 씨와 김 씨 모두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김 씨에게만 영장을 발부해 최 씨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재판에 나온 증인들은 하나같이 “최 씨가 누군지 모르고 김 씨가 실제 운영자”라고 잡아뗐다. 복역 중이던 김 씨조차 “내가 실제 운영자”라며 죄를 뒤집어썼다. 법정에 나온 공판 검사는 최 씨 측의 대규모 증인 신청과 ‘판박이’ 진술을 수상히 여겼다. 최 씨가 불필요한 증인 신청을 통해 고의로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최 씨의 휴대전화를 확인한 결과 “고군분투하시는 회장님, 멋진 4월이 되도록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항상 존경하고 상무 진급의 영광을 회장님께 돌립니다” 등 최 씨를 모른다던 증인들이 최 씨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문자메시지가 다수 발견됐다. 검찰이 위증교사 혐의를 추궁하자 최 씨는 충성도 높은 간부들을 엄선해 증인 신문 답변을 미리 교육했다고 시인했다. 이미 퇴직한 임원 A 씨에게는 위증 대가로 1000만 원을 주고 매수한 혐의도 추가로 밝혀졌다.

2013년 8월부터 올 4월까지 총 19명의 증인이 번갈아 위증을 하며 시간을 끄는 동안 최 씨는 회사 이름만 바꿔 영업을 계속했다. 그 사이 전국에 10곳이었던 지점은 33곳으로 늘었고 피해자는 6000명, 피해액은 930억 원이 새로 발생했다.

검찰 조사 결과 최 씨가 투자했다는 회사는 실체가 없거나 폐업 직전의 회사였고 피해자들에게는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는 주식교환증만 건네졌다. 최 씨는 끌어모은 930억 원 중 상당액을 회사 운영과 쓸모없는 땅을 사들이는 데 탕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피해 회복을 위해 최 씨가 차명으로 구입한 부동산을 압류하는 한편 최 씨의 은닉 재산을 추적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최 씨에 대한 과잉보호로 되레 위증의 꼬리를 밟힌 격”이라며 “최 씨가 살아야 사업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 범행을 불렀다”고 밝혔다. 최 씨에 대한 1심 재판은 계속 진행 중이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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