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마그나 카르타 800주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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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년은 세계사에서 1517년 루터의 종교 개혁,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1789년 프랑스 혁명, 1917년 러시아 혁명, 1990년 구(舊)소련 붕괴 등과 함께 기억해둘 만한 중요한 해다. 그해 6월 15일 영국에서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가 제정됐다. 마그나 카르타는 영어로 그레이트 차터(Great Charter), 우리말로는 대헌장(大憲章)이 된다. 마그나는 원래 위대해서가 아니라 내용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수식어다. 그러나 결국 인류 역사의 위대한 문서가 됐다.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남쪽으로 향하면 얼마 안 가 러니미드 초원 위를 지난다. 800년 전 그곳을 날아갔다면 귀족들과 기사들의 천막이 점점이 쳐진 사이로 잉글랜드 왕기(王旗)가 날리는 보다 큰 천막 하나를 보게 되었을 것이다. 실지왕(失地王)이라 불린 존 왕의 천막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잃은 땅을 찾기 위한 전쟁의 자금 조달을 위해 세금을 올렸다. 반발한 귀족들이 봉기해 런던을 빼앗고, 캔터베리 대주교의 중재로 러니미드에서 왕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데 그 결과가 대헌장이다.

▷본래 라틴어로 쓰인 대헌장은 처음에는 귀족들의 언어인 프랑스어로 번역되고 그 후 영어로 번역됐다. 13세기 말엽부터는 농민들도 대헌장을 기억해뒀다가 부정의에 항의할 때 인용했다. 1640년대 영국 의회는 찰스 1세를 몰아내는 법적 근거를 대헌장에서 찾았다. 18세기 미국 독립운동의 혁명가들부터 20세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까지 마그나 카르타에 기대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마그나 카르타 제39조에는 ‘자유민은 누구도 그의 동료들의 적법한 재판 또는 그 나라의 법에 의하지 않고는 체포되거나 구금되지 않는다’고 쓰여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2조는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않고서는 체포 구속 압수 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800년 전 마그나 카르타와 대한민국 헌법은 이렇게 이어져 있다. 오, 위대한 문서여.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1215년#마그나 카르타#대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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