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청소 30년… 고깃집 운영 10년… 1억 기부자 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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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너 소사이어티’ 가입한 제주 ‘돈사돈’ 주인 양정기씨

지난달 29일 제주 제주시 우평로 ‘돈사돈’에서 양정기 씨(오른쪽)가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한 뒤 최신원 SKC 회장(가운데), 서영숙 제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처장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양정기 씨 제공
지난달 29일 제주 제주시 우평로 ‘돈사돈’에서 양정기 씨(오른쪽)가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한 뒤 최신원 SKC 회장(가운데), 서영숙 제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처장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양정기 씨 제공
초등학교만 겨우 나왔다. 30년간 목욕탕에서 뼈가 으스러져라 일을 했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마지막이라 여기고 호남 출신 아내의 음식 솜씨를 믿어보기로 했다. 미친놈 소리까지 들었지만 일단 한번 질러보자 싶었다. 무슨 연유인지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입소문을 타고 육지 손님들까지 줄을 섰다. 믿기지 않는 행운이었다. 그 행운을 다른 이들과도 나누고 싶었다.

지난달 29일 제주 제주시 우평로에 위치한 고깃집 ‘돈사돈’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산하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대표들이 모였다. 아너 소사이어티 총 대표인 최신원 SKC 회장과 전국 17개 지역별 대표들이었다. 올해 운영 계획과 9월 서울에서 개최될 ‘세계공동모금회(UWW) 2015 서울 라운드테이블’ 지원 방안을 논의한 뒤 저녁 식사를 하던 중 깜짝 이벤트가 열렸다.

이 식당 주인 양정기 씨(56)가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한 것이다. 제주에서 35번째, 전국적으로는 828번째 회원이었다. 양 씨는 “평생 외상이란 걸 해본 적이 없어서 기부도 일시불로 하기로 했다”며 그 자리에서 1억 원을 내놨다.

제주 토박이인 그는 주로 목욕탕에서 청소를 하고 구두를 닦으며 생활비를 벌었다. 가난을 물려줄까 두려워 아내 김순덕 씨(52)와의 사이에서 자식도 낳지 않았다. 40대 중반이 넘도록 희망은 멀어 보였다. 결국 아내와 식당이라도 열어보기로 했다. 가족이나 이웃들이 아내의 음식 맛에 감탄하던 것을 생각하면서 용기를 낸 것이다.

양 씨는 2006년 1월 월세 50만 원에 제주시 노형동 아파트 공사현장 근처에 있는 50m²(약 15평) 가게를 빌렸다. 드럼통 8개를 사다가 테이블을 꾸몄다. 돈과 사돈이라도 맺어보자는 뜻에서 식당 이름은 ‘돈사돈’이라 지었다.

상호 덕분이었을까. 손님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2년 뒤 바로 옆 고물상 자리까지 임차해 식당을 2배로 넓혔다. 개업 5년째가 됐을 때는 6억 원에 아예 그 건물을 통째 인수했다. 양 씨는 이후 본점에서 약 300m 떨어진 곳에 230m²(약 70평) 크기의 건물을 사들였다. 돈사돈은 지난달 27일 리모델링을 마친 그 건물에 입주했다.

양 씨는 큰 성공을 거둔 지금도 여전히 직접 고기를 굽는다. 직원이 15명이나 되지만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겠다는 생각에서다. 한편으로는 예전의 자신처럼 어려움을 겪는 이웃에게 작은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도 커져 갔다.

지난해 3월 모범납세자로 국세청장상을 받은 뒤 식당에 우편물 하나가 도착했다. 아너 소사이어티라는 단체를 소개하는 책자였다. 양 씨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7년째 단골인 최 회장이 그곳 대표로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 돈사돈을 찾았다 음식 맛에 엄지를 세웠던 최 회장은 제주에 올 때마다 그곳을 들르곤 했다. 양 씨는 “최 회장은 우리 부부에게 항상 따뜻한 말을 건네주신 남다른 손님”이라며 “그분이 하는 일이라면 내 돈이 헛되이 쓰일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양 씨는 곧바로 최 회장에게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 방법을 물었다. 신중하게 생각하라던 최 회장은 1년을 훌쩍 넘긴 올해 봄에야 그 생각이 아직도 변함없는지 물었다. 양 씨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그렇다”라고 답했다. 양 씨는 “내가 받은 은혜를 이제 조금이나마 남들에게도 베풀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너 소사이어티에는 양 씨를 포함해 지난달 말까지 829명이 모두 913억 원을 기부했다. 아너 소사이어티 측은 연내 누적 기부액 1000억 원 돌파를 자신하고 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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