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승주]한미 간 전략적 대화가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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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 전 외무부 장관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 전 외무부 장관
금주로 예정되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가 연기되었다. 메르스 문제의 심각성에 비추어 박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방미를 강행했을 경우 국민 안전 문제에 신경을 쓰면서 한미 정상회담 등 방미 일정에 몰두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방미가 연기됨으로써 많은 사람이 가졌던 한국 외교의 ‘위기’ 의식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얼마 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미로 미일동맹이 격상된 것처럼 보이고 중일 관계도 개선되는 모습인 반면 한일 관계는 교착 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에 대해 한국이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고립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만났더라면 강한 결속을 보여 줌으로써 이러한 위기의식을 불식할 수 있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우리 외교가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니나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첫째, 최근 남중국해 사태에서와 같이 미중 관계가 긴장되고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싸고 미-러 관계가 악화돼 결과적으로 중-러의 결속이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에게 미국과 중국 사이에 이익과 견해의 충돌이 있을 때 명확한 입장을 요구한다. 또한 미국과 중-러 측과의 불화는 핵 문제 등 북한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를 얻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둘째, 아시아에서 중국이 미국의 유일 초강국 위치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 특히 이슬람국가(IS)의 세력 확장을 포함한 중동 정세의 악화로 미국의 관심과 에너지가 분산되고 있다. 동시에 중국의 대국주의와 힘겨루기가 점차 노골화하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새로운 도서를 조성하고 활주로까지 건설할 뿐만 아니라 영해·영공까지 주장하고 있다.

셋째, 아베 총리가 이끄는 일본은 중국의 부상에 위협을 느끼는 미국에 밀착하는 한편 주변국과의 과거사 문제를 희석시키는 ‘투 트랙 전략’의 효과를 보고 있다. 우리가 일본에 과거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반성을 촉구하고 있는 동안 미국과 동남아에서 일본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국가로 인식하는 경향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넷째,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증대하고 있는 점이다. 북한은 핵탄두의 소형화와 장거리 미사일을 추구하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에도 진전을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미국을 포함한 관련국들은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의 당면한 외교적 과제는 명백하다. 미중 간에 어떠한 ‘균형(balance)’을 취하는 것보다는 미중 관계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북핵을 비롯한 북한 문제 해결에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또한 한일 간의 역사 분쟁에 미국을 우리 편에 서게 하기보다는 한국이 중국에 기운다는 미국의 오해를 불식하는 일이 긴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정상 차원에서 미국과 진지한 전략적 대화와 협의를 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선 우리 나름의 국제정치적 구상과 전략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문제의 경우 우리가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워 입장 정리를 하지 못한다면 미국은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저울질하고 있다는 회의감을 갖게 되고 중국에는 우리의 정책 과정에 개입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제공해 줄 우려가 있다. 사드에 관한 결정은 미중 간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는 데 꼭 필요한 수단인가에 따라 판단해야 할 문제다.

한미 간의 ‘전략적 대화’를 위해서는 정상회담이 최적(最適)의 수단이지만 다른 기회와 채널도 계속 모색되어야 한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 대통령의 방미가 이른 시일 안에 이루어져 전략적 대화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 전 외무부 장관
#박근혜#방미#아베#전략적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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