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세상에 당당하게 외쳐라, 내 시간, 함부로 줄 수 없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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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푸어/브리짓 슐트 지음·안진이 옮김/516쪽·1만5000원·더퀘스트

직장과 육아를 동시에 책임지는 여성은늘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아간다. 저자는 책에서 일터, 가정, 여가에서 찢어진 시간의 조각들을 이어 붙여 사람답게 사는 법을 알려준다. 더퀘스트 제공
직장과 육아를 동시에 책임지는 여성은
늘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아간다. 저자는 책에서 일터, 가정, 여가에서 찢어진 시간의 조각들을 이어 붙여 사람답게 사는 법을 알려준다. 더퀘스트 제공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성탄절. 당신이 연말 인사가 담긴 성탄절 편지를 쓴다면 어떤 내용이 들어갈까. 책에 답이 있다.

저자가 만난 미국 노스다코타주립대 앤 버넷 교수는 평범한 소도시 사람들의 성탄절 편지를 모았다.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수천 장 분량이다. 버넷 교수는 편지 속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와 구절을 분류했다. 감사 인사보단 ‘정신없다’ ‘분주하다’ ‘허덕이다’ ‘피곤하다’ 같은 말이 주를 이뤘다.

버넷은 “다들 ‘당신보다 내가 더 바쁘다’고 자랑한다. 자신이 이웃들만큼 바쁘지 않으면 더 분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타임 푸어’를 쓴 워싱턴포스트 기자 브리짓 슐트. 더퀘스트 제공
‘타임 푸어’를 쓴 워싱턴포스트 기자 브리짓 슐트. 더퀘스트 제공
저자는 미국 워싱턴포스트 기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다. 일과 가정에 얽매이다 보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미처 하지 못한 일, 해야 할 일을 떠올리는 밤이 이어진다. 함께 사는 남편은 별 도움이 안 된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자신의 인생이 잡다한 일 더미뿐이었다고 후회할까 싶다.

저자는 ‘왜 이렇게 쫓기며 사는가,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삶이 가능할까’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시간활용 학술대회’에 참가해 시간연구가 여러 명에게 조언을 듣고 사회학자, 인류학자, 뇌과학자를 만나 학문적 배경을 탄탄히 쌓는다. 발로 뛰면서 시간에 쫓기는 자와 시간을 즐기는 사람을 만나고 ‘균형 잡힌 삶’을 보장하는 조직과 그렇지 못한 조직의 현장을 취재한다. 그렇게 모은 취재기록을 바탕으로 저자는 일, 사랑(가정), 놀이(여가) 영역에서 균형을 달성하는 법을 알려준다.

일터의 상황은 절망적이다. 아버지는 바빠서 얼굴도 못 보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더 바쁘게 일하고, 어머니는 육아 부담에 일을 줄였다가 한직을 전전하게 되는 ‘마미 트랙’에서 허우적거린다. 그나마 아이 있는 아버지는 ‘아빠 보너스’라도 받지, 아이 있는 엄마는 ‘엄마 벌점’ 속에 더 나쁜 일자리로 내몰린다.

저자는 주간 60∼70시간 근무를 강요하면 단기 효과를 거둘 순 있지만 장기적으론 비생산적임을 강조한다.

창조성과 생산성을 높이려면 첨단 정보기술(IT) 기기를 지급할 것이 아니라 ‘다르게 일하는 방식’을 존중하고 탄력 근무제를 선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 인건비 줄이기에 혈안이 돼 있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이런 연구 결과는 뜬구름 잡는 소리 취급을 받을 게 뻔하다. 하지만 저자의 경고까지 외면할 수 있을까.

저자는 1990∼2000년대에 나고 자라 막 노동 시장에 진입하는 Y세대(18∼35세)에 주목한다. 미국에만 800만 명이다. 그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받지 못하면 과감히 회사를 떠나 자신의 능력만으로 모험을 시작하거나 자발적 실업을 택한다. 최근 수많은 젊은이가 직장을 관두고 나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도전하는 한국도 귀담아들어 볼 만하다.

사랑(가정) 영역에선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골라 하고 기분 좋을 때만 아이를 돌보는 남자들의 반성을 촉구한다. 여자들도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 ‘좋은 엄마’란 규범에 휘둘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남자에게 일을 맡기는 변화가 필요하단다. 여가 부분에서는 너무 피곤해서 TV에만 빠지는 어리석음만 저지르지 않길 강조한다.

저자는 느긋하게 사는 사람들의 나라 덴마크를 소개한다. 그곳에서 배운 것은 단순하고 소박한 지금 이 순간에서 아름다움과 따스함을 발견하는 ‘휘게’(hygge·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뜻하는 덴마크어)의 미학이다.

시간에 쫓기는 삶을 바꾸려면 세상과 나를 동시에 바꿔야 한다. 세상을 향해 “시간은 권력이다. 나의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줄 수 없다”고 요구해야 하고, 나를 향해선 현재의 순간을 몰입하고 만끽하는 노력을 해야 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시간은 공짜가 아니다. 원제 Overwhelmed.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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