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찬의 SNS민심]어제는 천재소녀, 오늘은 사기소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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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하버드-스탠퍼드 동시입학 천재소녀 사건 보며, 영화 ‘나를 찾아줘(Gone girl·2014년)’가 떠오른다. 엄마가 만든 ‘어메이징 에이미’로 평생 살아온 딸의 이야기….”

@time****님이 올린 트윗은 김정윤 양 사건을 영화 캐릭터로 묘사해 인기를 끌었다.

미국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 동시 입학 허가를 받아 ‘천재 수학소녀’로 보도된 토머스제퍼슨 과학고 3학년 김정윤 양의 주장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천재소녀 이야기는 이달 초부터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김 양은 5일 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스탠퍼드대와 하버드대에 모두 합격했다며 “아마 하버드 졸업장을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양의 아버지는 4일 신문 인터뷰에서 “딸아이는 스탠퍼드대에 진학해 1∼2년간 연구를 발전시키고 하버드대에서 2∼3년을 더 공부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두 대학의 홍보 관계자는 합격증은 위조된 것이며 한국에 보도된 것처럼 “스탠퍼드대에 2년간 수학한 뒤 하버드대에서 공부를 마치고 어느 한쪽으로부터 졸업장을 받는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인했다. 이 이야기를 최초 보도한 미주중앙일보 객원기자 전영완 씨도 오보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물론 김 양의 부모는 확인보도 이후에도 딸의 동시합격 사실을 믿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트위터에는 천재소녀와 사기소녀가 타임라인에 동시에 존재하기도 했다. 특히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전화를 걸어 일종의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는 소식은 거짓이 어떻게 거짓을 확대재생산하는지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언급량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었다. 지난 한 주(6월 4∼10일) 동안 트위터와 블로그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타임라인은 메르스가 압도했다. 메르스를 직접 언급한 문서만 무려 200여만 건에 이르렀다. 인사청문회에 나온 황교안 총리 후보자의 언급량이 10만 건 남짓이었으니까 무려 20배에 이르는 숫자다. 지난 한 주 동안 한국의 SNS는 거의 ‘메르스 공화국’이었던 셈이다. 그 작은 틈새를 살짝 비집고 들어온 사건이 바로 이 천재소녀의 사기극이었다. 한 주 동안 천재소녀 혹은 김정윤을 언급한 문서는 모두 4173건이었고 한 신문의 보도로 거짓임이 드러난 10일 하루 동안 2872건을 기록했다.

한때 ‘동급생이 밝힌 천재소녀 김정윤 사기극의 전말’이란 커뮤니티 게시글이 트위터를 타고 빠르게 전파됐으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고 11일 현재 게시글은 삭제된 상태다. 천재소녀 김정윤과 함께 언급된 전체 연관어 1, 2, 3위는 예상했던 대로 하버드, 스탠퍼드, 동시입학이 차지했다. 명문대 동시 입학 사실이 천재소녀라는 언어 프레임과 맞물려 폭발력을 가졌던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트위터에는 비뚤어진 교육열풍을 꼬집는 글이 많이 올라왔다. @st_d*****님은 트위터에 “부모의 허황한 기대 투사가 학력 허언증의 기본 연료. 이번 천재소녀 사기극도 부모가 속아서 기뻐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태”라고 꼬집었고 @issa*****님도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미국의 한인들도 명문대병에 걸려 이 사달이 난 것 같네. 거짓말 하나가 산덩이처럼 커졌을 듯. ㅉㅉ”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전체 연관어 4위에 가족이, 7위에 부모가 올랐다. 또 사실 확인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합격 사실을 보도한 언론의 문제를 지적하는 글도 많이 올라왔다. 기사가 5위에, 언론과 기자가 8, 9위에 올랐다.

사기소녀가 된 천재소녀 해프닝은 여전히 학벌중심 사회의 민낯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4월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나온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 재력=자녀 학벌’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고 한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교육을 통한 기회의 사다리도 의미를 잃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영화 속 ‘리플리’를 흉내 낸 거짓 스토리는 어디선가 또 만들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가 전체 연관어 10위에 오른 이유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번에 불거진 ‘사기소녀가 된 천재소녀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천재소녀#사기소녀#나를 찾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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