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뉴엘’ 판박이 사기대출… 은행 또 당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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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원 짜리를 2억에… 수출 신용장 1만배 뻥튀기
1500억 대출 中企대표 구속… 월세 1800만원 빌라서 호화생활
부실심사 5개銀 347억 피해

개당 원가 2만 원짜리 TV캐비닛을 2억 원에 판다고 허위로 수출 신용장을 꾸민 뒤 은행에서 1500억 원대 무역금융을 대출받은 중소기업 대표가 세관당국에 적발됐다. 지난해 금융권에 엄청난 피해를 안긴 중견 가전업체 ‘모뉴엘’과 비슷한 사기 수법을 사용했다. 제대로 심사하지 않은 채 서류만 믿고 대출을 해준 은행들은 수백억 원대 손실을 입게 됐다.

관세청 서울본부세관은 2010년 7월부터 최근까지 거짓 수출 신용장으로 1522억 원을 부당하게 대출받은 금형제작업체 H사 대표 조모 씨(56)를 관세법 및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11일 밝혔다. 조 씨의 범죄를 도운 H사 자금담당과장 유모 씨(34)는 불구속 입건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조 씨는 2010년 7월부터 최근까지 291회에 걸쳐 원가가 2만 원도 안 되는 플라스틱 TV캐비닛을 본인 자녀 명의의 일본 페이퍼컴퍼니에 개당 2억 원에 판매했다고 부풀려 총 1563억 원을 세관에 수출 신고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1522억 원어치의 수출채권을 기업은행, SC은행 등 5개 시중은행에 매각했다.

조 씨는 만기 200일짜리 수출채권의 상환일이 도래하면 다시 위장 수출 방식으로 확보한 수출채권을 팔아 기존 대출금을 갚는 ‘돌려 막기’ 수법을 썼다.

그는 지금까지 1522억 원 중 286억 원을 갚지 않았는데 회사 운영자금으로 신용대출을 받은 61억 원을 더하면 미상환 금액이 347억 원에 이른다. H사의 실제 연매출은 6억 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씨는 대출받은 무역금융 가운데 28억 원을 수입대금 명목으로 일본의 페이퍼컴퍼니 계좌에 송금해 미국에서 주택 구입 등에 사용했다. 또 월세 1800만 원에 관리비 월 350만 원짜리 고급 빌라에서 내연녀와 생활했고 페라리 2대, 람보르기니 1대 등 외제차 10여 대를 리스해 타고 다녔다. 그는 법인카드로 60여억 원 상당의 금괴와 명품을 사들이고, 내연녀 명의의 회사에 25억 원을 송금하기도 했다.

세종=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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