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부터 살리고 봐야”… 가계빚 우려에도 금리 더 내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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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 1.5%로 인하]

李한은총재 “올 성장률 3.1% 안될수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점에서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한은은 기준금리를 연 1.75%에서 1.50%로 0.25%포인트 낮췄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李한은총재 “올 성장률 3.1% 안될수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점에서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한은은 기준금리를 연 1.75%에서 1.50%로 0.25%포인트 낮췄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한국은행이 가계부채 증가 등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11일 금리 인하 카드를 빼든 것은 그만큼 현 경기 상황이 기존 전망보다 심각하게 악화됐다는 판단 때문이다. 미국이 연내에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높고 이렇게 되면 1100조 원에 이르는 가계부채가 경제의 ‘폭탄’이 될 수도 있지만 일단 추락하는 경기부터 살리고 보자는 정부 안팎의 목소리가 더 설득력을 얻은 것으로 풀이된다.

○ 내수-수출 동반 악화에 선제 대응

한은이 금리 인하를 단행한 데는 메르스로 인한 경기 위축이 생각보다 악화되고 있다는 자체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은 본회의 전날인 10일 동향보고회의에서도 이달 초 백화점과 대형마트 매출 등 비공개 소비 지표 등을 토대로 메르스의 경제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를 집중 논의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메르스 때문에 소비가 부정적 영향을 받는 게 거의 분명해졌다”며 “최근 모니터링에서도 이대로라면 소비가 크게 꺾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이날 ‘메르스 사태의 경제적 효과분석’ 보고서에서 메르스 사태가 8월까지 지속되면 국내 투자는 3.46%, 소비와 수출은 각각 1.23%, 1.98%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 경우 국내총생산(GDP) 손실액은 20조922억 원에 이른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총재의 결단에는 ‘학습효과’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그해 8월까지 금리 인하를 미뤄 세월호의 경제적 충격에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통상 반년 정도 이후에 효과가 나타나는 통화정책의 시차를 감안할 때 지금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올 하반기 경기가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 부진 역시 금리 인하의 주된 요인이었다. 수출 증가율은 올 들어 다섯 달 연속 마이너스였고, 특히 지난달에는 감소 폭이 두 자릿수(―10.9%)로 확대됐다. 유럽 일본 등 주요국이 통화가치 절하 경쟁에 나선 만큼 한국도 금리를 내려 원화가치 상승을 제어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이 총재도 이날 “효과가 제한적이긴 하지만 금리를 낮추면 수출에는 도움이 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금융시장은 금리 인하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코스피는 전날보다 0.26% 올랐고, 원-달러 환율은 0.6원 상승(원화 가치 하락)하는 데 그쳤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오히려 0.024%포인트 상승했다. 그동안 금리 인하가 어느 정도 예상됐던 만큼 그 효과가 미리 반영된 때문으로 풀이됐다.

○ 미국 금리 인상 빨라지면 가계 빚 뇌관 터질 수도

이번 금리 인하로 한국 경제의 최대 위험 요인으로 꼽히는 가계부채는 당분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저금리에 주택 매수세가 맞물려 최근에도 가계 대출은 매달 7조∼8조 원씩 늘어나는 급증세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여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보고 있지만 미국이 금리를 인상해 시중금리가 오르면 급증한 이자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는 가계가 속출할 수 있다.

이 총재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금통위원들의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를 이번 의사 결정의 ‘부대 의견’ 형식으로 밝혔다. 한은은 기준금리를 내릴 테니 정부는 가계부채 문제를 책임지라는 것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다시 강화하고 변동금리·거치식 대출처럼 질적으로 위험한 대출을 억제하는 방안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도 “금융회사에 가계부채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부과해서라도 급증세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은 기준금리 인하에 이어 기존의 성장률 전망치(3.1%) 역시 이미 내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모습이다. 그러나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고돼 있는 만큼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다고 해서 추가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과의 금리 차가 축소되면 신흥국인 한국은 자본 유출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10일 오전 한국의 10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은 2.425%로 미국 10년물보다 0.01%포인트 더 낮게 형성됐다. 양국 국채 금리가 역전된 것은 2006년 5월 이후 처음이다.

유재동 jarrett@donga.com·장윤정·김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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