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한국인… 팔팔한 ‘피로 산업’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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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부부인 황지수 씨는 최근 이사한 집에 300만 원짜리 안마의자를 들여놨다. 회사에서 장시간 컴퓨터를 사용해 어깨 통증을 달고 사는 남편과 내년에 고3이 되는 아들을 위해 큰마음을 먹고 장만했다. 황 씨는 “초기 비용이 부담된 건 사실이지만, 집에서 원하는 시간에 언제라도 피로를 풀 수 있어 돈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불황에도 피로를 관리해 주는 서비스와 관련 용품 시장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스트레스와 바쁜 삶에 지친 현대인들이 몸의 피로를 관리해 주는 ‘피로 산업’에는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는 곳은 ‘위로 가전’이라 불리는 안마의자 시장이다. 안마의자 업계에 따르면 2007년 국내 안마의자 시장 규모는 200억 원에 불과했지만, 7년 만인 지난해 2400억 원 규모로 12배로 성장했다. 업계는 올해 3000억 원대로 시장 규모가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보통 가격이 수백만 원으로 비싼 점을 고려해 업체들이 대여 서비스에 나서면서 급격히 시장이 확대됐다. 한 달에 4만∼8만 원을 내고 빌린 뒤 약정 기간을 다 채우면 고객에게 소유권이 이전된다.

국내 시장 점유율 51%로 업계 1위인 바디프랜드는 사업을 시작한 2007년에는 매출이 27억 원에 불과했지만, 대여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로 매출이 급격히 늘어 지난해 1438억 원을 기록했다. 안마의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최근 쿠쿠전자와 LG전자, 동양매직, 코웨이 등도 대여 서비스에 뛰어들었다.

소파 대용으로 쓸 수 있는 리클라이너도 인기다. 리클라이너는 등받이와 발 받침대의 각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의자로 소파에 비해 고가이지만 내 몸에 맞게 의자를 조절할 수 있어 찾는 이가 많다. GS홈쇼핑 관계자는 “1인용 제품이 주를 이뤘으나 가족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120만∼150만 원대의 3, 4인용 제품이 출시되면서 1시간 방송에 600여 건의 주문이 이뤄질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건강기능식품 시장도 매년 두 자릿수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에 따르면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 규모(수입액 포함)는 2008년 1조920억 원에서 2013년 1조8674억 원으로 연평균 12.9% 성장했다. 김수창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 이사는 “건강기능식품을 구매하는 가장 큰 이유로 ‘피로 해소’를 꼽을 만큼 현대인들이 스트레스 받은 몸을 회복하기 위해 비타민 홍삼 제품 등을 찾고 있다”며 “수요가 많은 만큼 앞으로도 다양한 원료로 만든 기능성 제품들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건강기능식품은 5월 ‘가짜 백수오’ 파동으로 잠시 활력을 잃는 듯했으나 6월 들어 다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5월 건강기능식품 판매는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4.4% 일시적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6월(1∼9일 기준)에는 비타민과 홍삼제품 등의 판매가 늘어나면서 매출이 전년 대비 25% 상승했다. 홍삼제품 국내 점유율 1위인 정관장의 경우 메르스로 인해 면역력 이슈가 부각되면서 이달 들어서만 매출이 전년과 비교해 47% 증가했다.

잘 자는 ‘웰 슬리핑’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숙면을 유도하는 맞춤형 침구나 매트리스, 조명, 음료, 아로마 제품 등을 포함한 수면 관련 제품 시장은 업계 추산 1조∼1조5000억 원 정도다. 중형차 한 대 값을 넘나드는 수천만 원대의 기능성 매트리스나 맞춤형 침구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침구 관련 시장만 2011년 4800억 원에서 지난해 6000억 원대로 성장했다.

침구 브랜드 이브자리는 지난해 5월 수면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슬립 앤드 슬립’ 매장을 열었다. 단계별 전문 교육과정을 거친 ‘슬립 코디네이터’란 직원이 소비자의 신체 조건에 맞춘 베개와 수면 습관에 적합한 이불 등을 추천해 준다. 경추 측정기와 체압 측정기 등을 동원해 체형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알맞은 제품을 추천해주기 때문에 불면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이 찾고 있다. 지난해 론칭 이후 1년 만에 매장을 49곳으로 늘렸고, 올해 안에 10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피로를 풀기 위한 산업이 주목받는 것은 소득수준이 올라가면서 삶의 질을 돌아보려는 이들이 늘어난 우리 사회의 단면”이라며 “노동강도가 강한 한국 사회의 특성상 앞으로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피로 관련 산업의 발전은 정비례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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