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메드] (인터뷰) 중요무형문화재 구혜자 침선장

  • 입력 2015년 6월 11일 17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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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을 업으로 삼은 지 30여 년. 반평생을 손끝으로 옷을 지어온 구혜자 침선장(73)은 소박하지만 가난하진 않고 화려하지만 난하지는 않은 옷을 만들어 왔다. 그녀는 옷은 그 사람의 인품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에디터 곽은영 포토그래퍼 김현진


침선장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된 것은 작년 인기리에 종영된 TV드라마 <왔다! 장보리>의 덕이 크다. 극 중 침선장인 시어머니와 기술을 전수받는 큰 며느리의 실제 모델은 구혜자 침선장과 그의 시어머니이자 우리나라 1대 침선장인 정정완 선생이다.

“침선이라는 건 바늘과 실을 아우르는 말로 바느질을 의미하는 것인데, 사실 바느질은 가장 보편적이고 흔한 일이에요. 한국에는 ‘입은 거지는 얻어먹어도 벗은 거지는 못 얻어먹는다’는 속담이 있어요. 옷이란 게 그래요. 사치스럽게는 아니더라도 갖춰 입어야 하는 것이지요. 상대에 대해 예의를 갖추는 수단이기도 하고요. 제가 생각했을 때 우리가 옷을 적재적소에 바르게 입어야 하는 이유는 옷이 그 사람의 인품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전통은 전통대로

화려한 것은 난한 것과는 다르다. 소박한 것과 가난한 것도 서로 다르다. 구혜자 침선장은 소박하지만 가난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난하지 않은 옷을 만들어왔다. 그녀는 요즘 사람들이 한복을 너무 난하게 만들어 입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현대화와 융합이라는 이름 아래 지나치게 변형된 옷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그러나 저의 기본적인 생각은 ‘전통은 전통으로 두는 것이 좋다’예요. 지금 퓨전한복이란 이름으로 나오는 한복들을 보면 양복재단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옷은 원래 직선으로 지어져 사람이 움직일 때 그 선이 드러나도록 만들어졌는데, 그 단순한 선을 서양 복식에 따라 자르고 붙이면서 오히려 더 복잡해졌어요. 시대가 현대화되니까 억지로 제어할 필요는 없겠지만, 굳이 다르게 만들어서 입진 않았으면 해요. 제가 진부한 건지도 모르지만, 굳이 전통을 파괴하거나 억지로 현대를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르게 만들어서 입었으면 좋겠어요.”

전통복식의 매력은 그것이 생활문화의 산물이라는 데서 온다. 자연환경과 사회적 환경에 따라 발전돼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 한복도 시대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변화해왔다.

구 침선장의 말은 억지로 변화시키지 않더라도 시대에 맞게 한복도 자연히 변화돼 갈 것이란 것이다. 물론, 필요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줄 수는 있다. 구 침선장도 일의 편리성을 위해 옷소매를 좁게 했다.

“저는 흰 저고리만 입는데 이 옷을 입을 때 마음이 가장 편하기 때문이에요. 입다 보니 습관이 되었는데, 전시할 때도 옷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채도를 낮춰 입는 것을 좋아해요. 한복의 안감은 실크인데,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옷을 안 지어요. 그러나 옷의 모양을 내려면 속옷과 안감이 중요해요.”

구 침선장은 바느질로 한복을 짓고 있지만, 매일 한복을 입진 않는다. 침선장이다 보니 대외적으로 일이 있을 땐 한복을 갖춰 입는다.

“보통 한복은 불편하다고 말을 하는데, 간소화해 만들어 입을 수는 있어요. 저희 시누님도 제게 일상생활 속에서 입기 편한 한복을 부탁해 와서, 제가 치마는 짧게, 저고리는 길게 한 벌 만들어줬어요. 이런 복식은 6·25 이후 신여성들이 입던 형태이기도 해요.”


옛 옷을 복원한다는 것은

구혜자 침선장이 주로 하는 일은 바느질을 통한 우리 전통복식의 재현이다. 복원이라고 하면 옛 유물을 그대로 따라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데, 때로는 특정 인물의 순간을 옷으로 그대로 재현하기도 한다.

“1,600년대의 옷감을 재현할 수는 없지만, 구성과 문양은 재현할 수 있어요. 전체적으로 100% 재현할 수는 없지만, 그 옷이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 구성해보는 것은 가능하지요. 옛 옷의 구성을 되살려보다 보면 그 시대의 생활양식이나 사회문화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요. 바느질하는 것은 힘들지만, 옛 유물을 만났을 때는 소름 끼칠 정도로 기쁜 감정을 느껴요. 몇 백 년 전의 옷을 접하면 몇 백 년 전의 사람을 만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결국, 복식이 한 사람을 대변하는 부분이 크다는 의미인데, 직업, 성격, 집안 환경 등이 모두 옷 한 벌에 녹아있다. 그뿐만 아니라 특정 인물을 통해 특정 계층의 옷을 접하게 되면 그때의 생활양식도 희미하게 느낄 수 있다.

구 침선장은 정확한 복식의 재현을 위해서 문서로만 복식에 대한 정보를 접하는 게 아니라 될 수 있으면 직접 절이나 박물관을 찾아가서 두 눈으로 보고 느끼려고 한다. 그녀는 “글만 보고 작업한다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라고 말한다. 물론 박물관 측이나 옷을 보유하고 있는 기관에서 관리를 위해 옷을 쉽게 보여주진 않지만, 그럼에도 직접 실물로 보고 싶은 것이 구 침선장의 마음이다.

“이해는 하지만 실물로 보고 싶어요. 저는 그렇게 작업을 하므로 제가 작업한 옷들을 될 수 있으면 판매하지 않아요. 무엇이든 팔고 나면 두 번 다시 그 작업을 못 하게 되더라고요.”


흉내는 냈다

구혜자 침선장의 시어머니이자 우리나라 제1호 침선장이었던 정정완 선생은 며느리에게 10년간 한 번도 잘한다 못한다는 평가의 말을 하지 않았다.

“옛날 어른들의 교육은 도제식으로 어떤 교재가 있는 게 아니라 당신 말씀을 잘 듣고 따라해야 해요. 저는 그걸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어머님께서 말씀하시는 걸 숫자화 해 책을 만들었어요. 제가 10년 정도 일을 배웠을 때의 일인데, 향교에서 도포 10벌 주문이 들어왔어요. 제가 욕심을 내서 해보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일을 다 끝내고 나자 어머님께서 ‘흉내는 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흉내는 냈다, 그게 어머님껜 가장 큰 칭찬이었어요.”

한복 침선을 제대로 손에 익히려면 여자 저고리 100벌은 만들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여자 옷은 남자옷과는 달리 선이 있으므로 더 어렵고 손이 많이 간다.

기술이라는 건 손끝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구혜자 침선장은 타고난 재주가 있는 사람보다 오랫동안 노력하는 사람이 더 좋다고 말한다.

“제가 노력하는 형이에요. 명석한 두뇌를 가지거나 특별한 재주를 가진 건 아니더라도 많은 시간을 침선을 하며 보내왔어요. 요즘 현대인들은 굉장히 순간적이고 감각적이지요. 저는 학생들에게도 이야기해요. ‘천천히 하고 늦는 건 괜찮다, 빨리하고 틀리는 게 나쁜 것이다’ 내일 끝내도 괜찮으니까 오늘 완전하게 올바르게 하자는 것이에요. 그게 제가 인생을 살아온 방법입니다.”

반평생을 침선에 집중해온 그이지만 지금도 침선은 어려운 것이다. 하면 할수록 어려워지는 이유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본인 스스로가 알기 때문이다. 까다로워지고 스스로에게 잔소리는 더 많아진다.

“가끔은 내 오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완벽하게 모든 걸 하려고 하나!’ 생각하기도 해요. 하지만 결국 스스로에게 엄격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바느질이라는 게 어렵구나, 잘하기 힘들구나 생각해요. 아마 앞으로도 그렇겠지요?”


기사제공 = 엠미디어(M MEDIA) 라메드 편집부(www.ramede.net), 취재 곽은영 기자(kss@egihu.com), 촬영 김현진 사진기자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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