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당신의 말 한마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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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남편이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러나 친구의 지극정성으로 적잖이 회복되어 집에서 통원치료를 할 정도가 되었다.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능하고 씩씩하게 병간호를 하고 있는 친구가 동창모임에 나왔다.

“얘들아, 오늘 우리 남편이 나보고 뭐라고 했는지 아니?”

친구가 남편에게 일감을 주기 위해서 일부러 빨래를 개키라고 했더니 “그럼 네가 하는 일은 뭔데?”라고 하더라는 것. 직장에 나가면서 남편의 병간호와 집안일까지 1인 몇 역을 하고 있는 아내에게 그런 투정을 부렸다는 것이 어이없어서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 친구의 남편은 오랜만에 자기 손으로 무언가 할 수 있게 된 것이 자랑스러워서 “그럼 네가 하는 일은 뭐냐”며 뻐겨본 것이리라.

그런데 아프지도 않은 멀쩡한 남편들이 종종 아내에게 “네가 집에서 하는 일이 뭐가 있는데?”라는 지능 떨어지는 말을 해서 아내를 폭발시킨다. 집 밖에서의 일만 일이라는 반쪽짜리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한 친구는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남편과 한바탕 싸웠다고 했다. 평생 결혼기념일을 챙기지 않는 남편에게 다른 친구가 받은 결혼기념일 이벤트를 이야기해주었더니 남편은 깨달음은커녕 이렇게 일축해버리더라고 했다. “당신 친구가 미인인가 보지.”

우리는 그 생뚱맞은 반응에 “네 남편 재미있다”고 깔깔거리는 것으로 친구의 서운함을 눙치려 했지만 친구는 말을 예쁘게 할 줄 모르는 남편에게 정말 화가 난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한 할머니가 여든 살 생일파티에서 이혼을 선언했다고 한다. 자식들이 깜짝 놀라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내가 너의 아버지랑 수십 년을 살면서 빵을 구워 늘 가운데 말랑거리는 부분을 주고 나는 가장자리 딱딱한 것만 먹었는데, 너의 아버지는 한 번도 내게 부드러운 걸 먹어보라고 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식들이 아버지가 너무하셨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할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실 나는 말랑한 것보다 딱딱한 걸 더 좋아하는데 너의 엄마가 늘 딱딱한 걸 먹기에 달라는 말도 못하고 주는 대로 먹었다”는 것.

황혼이혼을 원치 않는다면 여든까지 버티지 말고 할 말은 하고 살자. 다만 생뚱맞거나 저급한 수준의 말은 피해야 한다. 그나저나 나의 결혼기념일은 지난주였다. 선물도 이벤트도 없이 지나갔다. 이제라도 말을 좀 해볼까?

윤세영 수필가
#황혼이혼#결혼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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