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 前 한국외국어대 총장 “자유와 정의위해 목숨거는 돈키호테 정신, 어디 없습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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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만에 ‘돈키호테’ 2편 완역한 박철 前 한국외국어대 총장

박철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1편과 달리 2편에서 돈키호테는 광인이 아니라 현자 같다.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사람으로 묘사된다”고 말했다. 저자 제공
박철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1편과 달리 2편에서 돈키호테는 광인이 아니라 현자 같다.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사람으로 묘사된다”고 말했다. 저자 제공
박철 한국외국어대 교수(65)가 ‘돈키호테’ 2편 번역에 들어간 것은 1편이 나온 지 10년 만이었다. 2004년 국내 최초로 스페인어판을 우리말로 옮긴 ‘돈키호테’ 1편을 선보였던 그는 이듬해 2편 번역에 들어갔다. 작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중단됐다. 한국외국어대 총장을 맡게 돼서다. 10일 전화 인터뷰에서 박 교수는 “올해 꼭 내고 싶어서 지난해 2월 퇴임식을 마치자마자 번역을 다시 시작했다”고 말했다.

올해는 ‘돈키호테’ 출간 400년을 맞는 해이자 국내에 ‘돈키호테’가 소개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1915년 육당 최남선이 잡지 ‘청춘’을 통해 ‘돈키호테’를 부분 발췌해 전하면서 이 ‘미치광이 영웅’이 우리나라에도 알려졌다.

1년 3개월의 작업 끝에 박 교수가 번역한 ‘돈키호테’ 2편(시공사)이 최근 출간됐다. ‘돈키호테’ 1편은 788쪽, 2편은 908쪽에 이른다. 방대한 분량에 때로 마음이 급해지기도 했지만 “인생철학과 교훈이 줄줄 넘치는” 내용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번역에 몰두했다. 스페인 왕립한림원이 펴낸 돈키호테 출간 400주년 기념 판본을 번역본으로 삼았고 다른 판본도 참고했다. 번역 작업 중 무엇보다 까다로웠던 건 어휘였다.

“세르반테스는 당시 세습 귀족에 반발하고 인간이 땀과 노력으로 자신의 혈통을 만들어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작가의 이런 사상이 그가 사용한 어휘에 스며 있는데 이걸 살리는 게 쉽지 않았어요. 소설에서 돈키호테가 ‘훌륭한 공화국에서는 다음 네 가지를 위해서만 무기를 들고 칼을 뽑아 자기 백성과 목숨과 재산을 걸고 위험을 감수합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스페인어 ‘Rep´ublica’를 ‘국가’나 ‘나라’로 옮길 수도 있겠지만 ‘공화국’의 뜻을 그대로 살려서 번역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공화국’이라는 어휘에 돈키호테가 추구하는, 인간 스스로의 노력과 성취가 인정받는 세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봤습니다.”

1편의 돈키호테는 잘 알려졌듯 이웃 농부의 딸을 둘시네아 공주로 생각하고, 풍차를 거인으로 여기고 싸우겠다고 돌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2편의 돈키호테는 황소를 황소로, 성을 성으로 보는 정상적인 사람이고 오히려 다른 인물들이 돈키호테를 속이려 든다.

“가령 2편에서 돈키호테는 사자들과 결투를 벌이게 됩니다. 1편에선 양떼를 군대로 착각하고 싸울 정도인데, 2편에선 상대가 사자들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결투를 한 것은 광기 때문이 아니라 지나치고 터무니없어 보이는 용기에 따른 겁니다.” 2편에선 시대비판과 풍자정신이 좀 더 생생하게 드러나고 미래의 공화국에 대한 열망을 더욱 강렬하게 표현되는 게 특징이다.

박 교수는 ‘돈키호테’가 ‘고전’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은 책에 담긴 ‘자유’라는 주제 의식 때문이라고 밝혔다. “돈키호테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기사입니다. 그는 정의와 자유를 위해 항상 올곧은 행동을 하는 인간상을 상징합니다. 2편에서 돈키호테가 ‘인간에게 자유는 하늘이 준 가장 고귀한 선물’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자유와 명예를 위해서는 목숨을 걸 수 있고, 또 걸어야 한다는 게 책의 주제입니다. 이것이 40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돈키호테’가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입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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