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訪美까지 연기한 朴 대통령 ‘메르스 진압사령관’ 역할 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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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4일부터 4박 6일로 예정된 미국 방문 일정을 연기한다고 어제 발표했다. 외교적 득실보다 메르스 감염 상황을 우려하는 국내 여론을 감안한 정치적 결정이다. 작년 세월호 참사에 이어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초동 대처 미비가 드러나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무엇보다 우선시한다는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미국도 국내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을 연기하기도 한다. 본란은 9일 ‘박 대통령, 메르스 진압하고 방미하라’는 사설에서 메르스 2차 확산 차단에 실패한다면 국민의 분노가 커질 우려가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빡빡한 스케줄 때문에 한미 정상회담 일자를 다시 정하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양국이 밝힌 대로 상호 편리한 가장 빠른 시기에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도록 정부는 외교 능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이 방미 나흘 전에 연기를 결정한 데 따르는 외교적 부담은 작지 않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4월 방미에 이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9월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한국도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5000만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실전배치 상황이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실체인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메르스 사태가 심각하다는 불안감이 국제사회에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부담을 무릅쓰고 방미를 연기한 박 대통령은 그만큼 확고한 각오와 책임감으로 메르스 사태를 통제해야 한다. 아직도 컨트롤타워가 어디인지 헷갈릴 만큼 정부 내에서도 중구난방 딴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한국-세계보건기구(WHO) 합동 조사단은 어제 ‘첫 번째 한국 정부 권고사항’에서 메르스 확산과 학교가 연관이 없는 만큼 현재 휴업하는 학교의 수업 재개를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어제 뒤늦게 “학교 휴업 여부를 메르스 감염 우려 정도와 지역 상황을 감안해 시도교육감이 정하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려보냈으니 손발이 맞지 않는 느낌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여야의 구별을 떠나 모두가 합심해 전염병을 물리쳐야 한다는 총력전의 자세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을 격려하는 한편 메르스에 노출된 사람은 자신과 이웃을 위해 있는 그대로 밝히고 당국 조치에 따르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박 대통령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메르스 진압 총사령관’이다. 한미 정상회담을 연기한 만큼 박 대통령이 총리 공백 상태의 내각과 청와대를 전면에서 지휘해 메르스와 관련한 국내외의 불안을 잠재워야 한다. 중요한 외교 일정까지 미룬 이유를 분명하게 입증하지 못하면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
#메르스#방미 연기#박근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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