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감투 노리다 꼬리 내린 대한야구협회장의 망신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6월 11일 05시 45분


사진|스포츠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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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의 본산인 대한야구협회(KBA)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 박상희(64) 대한야구협회장의 섣부른 행동 탓이다.

박상희 대한야구협회장은 10일 열린 제8대 국민생활체육전국야구연합회(KBF) 회장 선거에 나섰다가 투표를 한 시간여 앞둔 상황에서 사퇴를 했다. 박 회장은 이날 투표권을 가진 전국대의원들 앞에서 “대한야구협회에 현안이 산적해 있기 때문에 대한야구협회장으로서 심사숙고해서 사퇴하기로 했다”는 하차의 변을 밝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입후보한 박영선 투나웨딩컨벤션 회장이 단일후보가 됐고, 대의원들의 찬반 투표 끝에 찬성 22표-반대 3표로 박영선 회장이 전국야구연합회장에 당선됐다.

박상희 회장의 이 같은 행보에 많은 야구인들이 혀를 차고 있다. 우선 5월 12일 대한야구협회장 선거를 치른 뒤 한달도 채 되지 않아 생활체육야구를 관장하는 전국야구연합회장 선거전에 나선 것 자체가 코미디다. 특히나 지난 1일 후보자 등록을 마친 그는 이날 선거 직전에 세 불리를 느끼고 중도하차를 하면서 야구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대한야구협회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야구의 본산이자 뿌리다. 그런데 자신의 명함에 타이틀 하나를 더 달기 위해 선거전에 나섰다가 꼬리를 내린 모양새니 망신도 보통 망신이 아니다.

대한야구협회는 지난달 회장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분열 양상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19표 중 과반수를 겨우 넘는 10표를 얻어 협회장에 오른 그는 당선 소감으로 자신을 지지한 야구인과 그렇지 않은 야구인을 구분해 ‘패거리’ 운운하며 수차례 막말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면서 상생을 모색해야할 한국야구위원회(KBO)를 향해서도 “샅바싸움을 해야 한다”는 둥 허무맹랑한 비난을 퍼부어 논란을 키웠다.

그가 이날 선거에 앞서 사퇴의 변을 밝힌 것처럼, 지금 대한야구협회엔 현안이 산적해 있다. 우선 사실상 공석 상태인 전무이사와 사무국장을 비롯한 집행부 구성 등 조직부터 정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행정 공백이 길어지면 대한야구협회는 식물협회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7월에 본선대회를 치르는 대통령배전국고교야구대회는 2015년도 사업계획에도 없었던 지역예선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지역간, 학교간, 감독들간에 반목과 질시로 분열되고 있다. 또한 협회와 일선학교는 대학입시와 관련해 비리 혐의로 수사가 진행 중이다.

지난 3월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를 통합하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2016년 3월까지 단체를 통합해야 한다. 그가 대한야구협회장으로서 일을 잘한다면 가만히 있어도 주변에서 통합회장으로 추대하게 돼 있다. 그런데 뭐가 그리 급했는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거전에 뛰어들었다가 중도사퇴를 했으니 대한야구협회의 위신이 말이 아니다. 이제 대한야구협회가 생활체육야구연합회보다 못한 위상으로 전락해버린 셈이다.

권력이라는 불빛에는 불나방들이 몰려들게 마련이다. 수장이 불나방들의 감언이설에 꼬여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갈지자 행보를 계속 이어간다면 한국아마추어야구의 미래는 암담해질 수밖에 없다. 벌써 박상희 회장이 조만간 또 중소기업중앙회의 회장 선거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다. 대한야구협회장이 됐다면 제발 이제부터라도 야구를 위해 고민하고 일해야 한다. 할 일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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