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억 퇴짜 뒤… 220억에 팔린 ‘패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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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업계 M&A 새옹지마 화제

“1100억 원을 버리고 220억 원을 선택했다.”

다음카카오가 글로벌 사업 확대의 디딤돌로 삼기 위해 보름 전 인수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패스(Path)’와 ‘패스 톡(Path Talk)’을 두고 정보통신기술(ICT)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농담이다.

2011년 글로벌 ICT 업체의 ‘공룡’ 구글이 패스 측에 1100억 원 수준의 인수를 제안했지만 거절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ICT 업계에서는 다음카카오의 패스 인수 금액을 당시 구글이 제시한 금액의 20% 남짓에 불과한 2000만 달러(약 220억 원) 수준으로 보고 있다.

구글이 패스 인수를 추진했던 시기는 패스가 ‘반짝 인기’를 끌던 때였다. ICT 업계 관계자는 “패스는 페이스북 플랫폼 개발자와 음악 공유 프로그램 ‘냅스터’ 창업자가 함께 회사를 차려 창업 단계부터 이목이 집중됐다”며 “가입자도 초기부터 급속도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패스는 구글이 제안한 인수 금액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패스는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3년 주요 경영진이 퇴사하고, 직원 20%가 구조조정을 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결론만 놓고 보자면 구글로서는 패스의 인수 거절이 ‘천만다행’이었고, 패스로서는 ‘실수’였던 셈이다.

구글도 큰 실수를 저지를 뻔한 적이 있다.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1999년 인터넷 서비스 업체 익사이트의 최고경영자(CEO) 조지 벨에게 자신들이 만든 검색엔진을 100만 달러(약 10억8000만 원)에 사라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구글의 현재 가치는 약 400조 원에 달한다. 벨은 “지상 최대의 실수를 했다”는 오명을 얻게 됐다.

벤처·스타트업 업계 창업이 활발해지면서 인수합병에 대한 다양한 일화도 늘어나고 있다. 인수 금액만 놓고 보자면 페이스북 마크 저커버그의 인수 제안을 거절한 에번 스피걸 스냅챗 공동 창업자 겸 CEO의 일화가 손에 꼽힌다. 2013년 저커버그가 3조 원의 현금 인수를 제안했지만 거절했기 때문이다. 스냅챗은 이후 승승장구하며 180억 달러(약 19조9800억 원) 가치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최근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정보기술(IT) 업계의 젊은 억만장자 1위로 스피걸을 꼽았다. 개인 자산만 15억 달러(약 1조6430억 원)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페이스북을 10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가 퇴짜를 맞은 야후는 한국 기업에도 관심이 많았다. 인터넷 동창회 서비스 아이러브스쿨에 500억 원의 인수 제안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하지만 아이러브스쿨은 이제 ‘추억의 서비스’로 남았다.

최근 다음카카오가 626억 원에 인수한 록앤올의 ‘국민내비 김기사’도 수많은 인수 제안을 거절한 바 있다. 박종환 록앤올 대표는 “대기업으로부터 인수 제의를 받은 건 총 3번인데 모두 거절했다”며 “금액도 불만족스러웠지만 우선 서비스 확장 및 해외 진출 등 방향성과 관련해 견해차가 컸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다음카카오에 매각한 건 성공적”이라고 덧붙였다.

벤처·스타트업 경영진들은 “인수합병 제안이 들어오면 가장 고민된다”고 말한다. 인수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만큼 서비스가 잘되고 있기 때문이라 결정하기가 어렵다. 반대로 기대만큼 매출이 나오지 않거나 경쟁이 치열할 때, 혹은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을 때 매각을 고려하게 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때는 매각하기 가장 나쁜 시기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패스#벤처#다음카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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