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실패로 가는 ‘닥치고 현지화’… 중용의 길 찾아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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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성공적인 해외 진출 전략

#다국적기업 볼보건설기계의 창원공장에서 생산돼 매년 전 세계 120여 개국으로 수출되는 굴착기에는 지역 특색에 맞게 특화된 옵션이 달려 있다. 중국에 수출하는 굴착기에는 위성위치추적시스템과 도난 방지 장치, 원격 시동 제어 장치가 기본으로 달려 있다. 이탈리아용 전차바퀴식 굴착기는 기계 폭이 좁다. 좁은 길과 문화재가 많은 이탈리아의 전통 시가지에서 작업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해서다. 암석 채취가 많은 인도 수출용에는 운전자를 보호하는 단단한 보호대가 기본 옵션으로 들어가 있다. 러시아용은 극한의 추위에서도 얼어붙지 않는 오일 등이 패키지 옵션으로 구성된다. 이같이 ‘현지화된 제품 전략’으로 볼보건설기계는 매년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

#세계 전동공구 시장에서 1970년대까지 선두를 달리던 미국 기업 블랙앤드데커(B&D)는 1980년대 들어 실적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다른 외부 요인도 문제였지만, ‘지나친 현지화’가 가장 큰 문제였다. 각국 생산 법인별로 독자적인 인사 체계를 갖추고 제품과 제품 라인을 각각 다른 현지에 적응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자회사 간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한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제품이 다른 시장에는 수년 후에나 소개됐으며, 한때는 전 세계 8개의 디자인센터에서 260개의 서로 다른 모터를 생산하기도 했다. 실제로는 10개 정도의 기본 모델만 있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조직, 인력, 연구개발(R&D), 생산 등 모든 면에서 중복과 비효율이 벌어진 것이다.

볼보와 블랙앤드데커는 현지화 전략과 관련한 대표적 성공과 실패 사례다. 볼보건설기계의 사례를 공부한 뒤 ‘현지화가 해법’이라고만 생각하다가는 두 번째 사례에서처럼 큰 실패를 겪을 수도 있다. ‘적극적 현지화’를 해외 진출 성공의 ‘마법’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는 178호(6월 1호) 스페셜 리포트로 성공적인 현지화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 현지화의 네 가지 차원

‘기업 글로벌 전략의 일환’으로서 현지화는 크게 네 가지 차원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지분이나 경영진 등 ‘구조적인 측면에서의 현지화’다. 특히 경영자의 국적은 상황에 따라 현지화 성패를 좌우하기도 하는데, 인도 콜라 시장에서 펩시와 코카콜라의 전략 차이가 대표적인 사례다. 현지인을 경영자로 내세웠던 펩시와 달리 코카콜라는 본사에서 경영자를 직접 파견했는데 현지 적응 실패로 인도에서는 성과가 좋지 않았다. 한국에서 프랑스 카르푸나 미국 월마트가 저조한 실적을 기록했지만, 경영진을 한국인으로 두고 영국명 대신 한국식 명칭 ‘홈플러스’를 쓰도록 한 테스코는 한때 성장을 이어 가기도 했다. 물론 이렇게 현지인을 쓰는 게 언제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각국의 문화와 업종에 따라 선택이 달라져야 한다.

두 번째 차원은 마케팅이나 인사·노사 관리를 포함한 전반적 경영 전략이나 운영과 관련해 얼마나 현지 상황을 반영하고 따르느냐 하는 것이다. 오리온은 중국에 여러 개의 현지 생산 시설을 가동하고 있는데, 소수의 관리자를 제외한 생산·영업 직원의 99%를 현지인으로 채용하는 등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펼쳐 성공을 거뒀다. ‘표준화’된 기술력과 디자인이 핵심이 될 수밖에 없는 자동차의 경우 약간의 변형으로 현지화가 가능하다. 마케팅 차원에서 현대자동차가 최근 출시한 ‘올 뉴 투싼’은 ‘변속 시 충격 강도’를 유럽과 북미 지역의 특성에 맞게 조절함으로써 각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셋째,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원료, 원자재, 부품 등의 현지 조달 비중을 중심으로 현지화를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현대자동차가 인도에 단독 투자 형태로 진출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부품의 현지 조달에 대한 최고경영진의 강력한 의지 표명 덕분이다. 부품의 현지 조달 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지에 우수한 부품 업체들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현지 조달부터 생각하지 말고 ‘협력 업체와의 동반 진출’을 모색할 수도 있다. 현지화가 얼마나 ‘정해진 답’이 없는 문제인지를 잘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현지화를 위해 고려해야 하는 차원은 현지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등 현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인식되고자 하는 노력과 활동 등이다. 삼성은 러시아에서 볼쇼이극장, 에르미타주 박물관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국내에 진출해 있는 외국 기업들 역시 국악 교육을 지원하거나 다양한 형태의 의료 봉사 활동을 통해 ‘외국 기업에 대한 반감’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활동은 기업의 장기 성과에 도움을 준다.

○ ‘조정된 현지화’를 추구하라

자신의 기업과 속한 산업, 자신이 진출할 국가와 지역의 문화와 특성을 모두 고려한 상태에서 다시 자문해 보자.

“현지화는 해당 지역 진출 시 반드시 바람직한 것인가?” 충분한 검토를 통해서 ‘바람직하다’는 결론이 나오더라도 ‘올바른 현지화’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현지화는 ‘배려 및 겸손’과 통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지금까지 현지화 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온 건 ‘품질에 있어서 소비자들이 완벽하게 신뢰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염려와 그에 따른 겸손함 덕분일 수 있다. 우리 기업 제품이 고품질로 인식되기 시작한 지금이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할 시기다. 표준화는 ‘자신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칫 교만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일부 일본 기업은 바로 이 때문에 위기를 겪었다.

최악의 표준화는 표준화의 가능성과 장점 등을 면밀히 분석한 후에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막연한 자신감이나 배려 부족으로 내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다. 반면 최악의 현지화는 ‘현지화를 위한 맹목적인 현지화’이거나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 오류에서 오는 ‘잘못된 현지화’다. 일단 현지화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은 글로벌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적절한 접근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기업 내외부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동원해 ‘적절한 선’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조정된 현지화(coordinated localization)’가 답이다. 이를 위한 몇 가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시장에서 양보 없이 유지하고 싶은 전략이나 프로그램을 선정하라.

둘째, 첫 번째 가이드라인에서 선정한 ‘양보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도 부분적인 변경 가능성은 열어 놓으라.

셋째, 현지화가 가능한 부분에 대해 필요성과 가능성을 철저히 따져 실행하라.

넷째, 현지화에 소요되는 비용에 대한 엄밀한 분석을 통해 제대로 된 추정치를 확보해 최종 의사결정을 하라.

김주헌 차의과학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 jkim@cha.ac.kr

정리=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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