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메르스 비상… ‘V의 습격’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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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무리했다 싶으면 찾아오는 가벼운 몸살감기부터 눈병, 장염, 그리고 최근 국내에서 확산되고 있는 메르스까지. 인간을 호시탐탐 노리는 바이러스와 이에 대응하는 인간의 대결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전쟁이다. 인간의 몸은 오랫동안 바이러스의 침략에 맞서 견고한 방어(면역)체계를 갖춰 왔다. 하지만 바이러스도 면역체계에서 빈틈을 찾아 교묘히 파고드는 생존 전략을 발전시켜 왔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리보핵산(RNA) 바이러스의 전형적 특징인 빠른 복제와 재빠른 숙주 이동 등 ‘게릴라전’을 펼치며 인간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거듭되는 바이러스의 위협에 인간은 어떻게 대처할까.  
▼ 자살 명령받은 세포 살려 무기 활용… 인체와 ‘두뇌 싸움’ ▼

바이러스의 습격


인체는 바이러스가 세포에 접근하는 낌새를 감지하는 순간 표피세포에서 산성물질, 병원균 분해효소 등을 분비하며 초도방어를 시작한다.

만약 바이러스가 초도방어막을 통과해 세포를 감염시키기 시작하면 인체는 바이러스와의 1차 전투, 즉 1차 면역반응을 시작한다.

일단 발열과 염증 반응을 일으킨다. 열에 약한 바이러스는 발열 반응에 무력화된다. 염증 반응으로 모세혈관을 확장시켜 인터페론 같은 항바이러스성 단백질과 백혈구를 감염된 조직에 대량 투입한다. 면역세포인 자연살해세포(NK세포)는 감염된 세포를 파괴하면서 바이러스를 함께 죽이는 각개전투를 벌인다.

1차 전투에도 바이러스를 무찌른 성과가 크지 않다면 2차 전투, 즉 2차 면역반응이 바로 이어진다. 2차 면역반응은 침입한 바이러스를 정밀 분석하는 단계부터 시작된다. 1차 면역반응에서 무차별적으로 바이러스 주변을 공격했다면 2차 면역반응에서는 바이러스만 콕 찍어서 공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체 면역체계는 침입한 바이러스만 인식할 수 있는 항체를 분비한다. 항체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만 찾아내고, 강력한 면역세포인 T세포가 이들을 처리한다. 인체 안에는 T세포가 1000억 개 정도 있고, 종류도 2500만 개쯤 된다.

목표한 바이러스만 선별적으로 파괴하는 만큼 2차 면역반응은 강력하다. 특히 2차 면역반응은 예전에 감염됐던 바이러스가 다시 침입했을 때 일어나는 만큼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다.

이 원리를 이용한 것이 백신이다. 바이러스의 독성을 약화시켜 산 채로 몸에 집어넣는 ‘생(生)백신’이나 바이러스를 열이나 포르말린으로 죽여서 몸에 집어넣은 ‘사(死)백신’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난해 전 세계를 불안에 떨게 한 에볼라처럼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는 자칫 잘못해서 환자의 면역체계가 백신을 이겨내지 못하면 끔찍한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고리 모양으로 생긴 유전자(DNA)인 플라스미드를 이용한 ‘플라스미드 백신’을 개발하는 등 다른 방식을 고안하고 있다.

점점 더 악랄해지는 바이러스의 생존 전략

인간의 면역체계가 완벽해질수록 바이러스도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전략을 진화시켜 왔다. 기관지에 침투해 폐렴을 일으키거나 결막에 붙어 유행성결막염을 유발하는 아데노바이러스는 인체가 감염된 세포를 없애기 위해 ‘자살’ 명령을 내린 세포를 다시 살려내는 무기를 쓴다. 아데노바이러스는 인체에 침투한 뒤 ‘E1B’라는 단백질을 만들어 세포 사멸을 막는다. 또 자신이 감염시킨 세포를 최대한 오래 살려두면서 자신을 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도 아데노바이러스처럼 ‘노예’ 전략을 구사하지만 한층 악랄하다. 인체의 대표적인 항암 단백질인 ‘p53’을 노리는 것이다. p53은 세포의 이상 증식을 억제한다. 만약 이상 증식이 일어나면 스스로 자살을 유도한다. p53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세포가 무분별하게 증식해 암세포가 된다. 인유두종바이러스는 면역체계의 ‘아킬레스 힘줄’을 정면으로 노리는 셈이다.

급성간염이나 만성간염, 최악의 경우 간암을 유발하는 B형 간염 바이러스는 ‘HBX’라는 단백질을 만들어 간세포를 새로 만들라는 인체의 명령을 간세포 파괴 명령으로 바꾸는 교묘한 전략을 구사한다.

동남아와 중남미 등 열대지방에서 모기에 물려 감염되는 뎅기바이러스는 인체 면역체계를 자신의 생존 수단으로 활용한다. 대개 한번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동일한 바이러스에 또 감염되면 2차 면역반응 덕분에 바이러스를 쉽게 물리칠 수 있다. 하지만 뎅기바이러스는 2차 면역반응을 주도하는 항체에 달라붙은 뒤 항체를 세포에 들어가기 위한 ‘출입증’으로 이용한다. 바이러스를 잡으려고 만든 항체가 오히려 바이러스의 침투를 돕는 꼴이다. 이 때문에 뎅기열은 여러 번 걸릴 수 있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을 일으키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도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골라 죽이는 T세포를 감염시켜 인간의 면역체계를 무력화한다.

치명적일수록 전염성 낮아

바이러스가 인체 면역체계를 뚫고 들어와 숙주를 괴롭힌다면 인간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패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바이러스의 최종 목적이 숙주를 죽이는 게 아니라고 얘기한다. 바이러스가 처음 침투한 숙주에서 다음 숙주로 이동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널리 퍼뜨려 팬데믹(대유행)을 일으켜야 인간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걸로 보는 게 적절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을 공포에 떨게 하는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인간을 감염시키더라도 아프게 할 뿐 무조건 죽이지는 않는다. 팬데믹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염이 잘 일어나고 △공기 전염이 가능하며 △사망률이 너무 높아서는 안 된다는 기본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가령 에볼라 바이러스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종으로 불리는 자이르 바이러스는 1976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처음 발견될 당시 환자가 열흘 내에 장기가 녹아 목구멍으로 피를 쏟으며 죽게 만들었다. 치사율은 90%에 육박했다.

반면 지난해 서아프리카에서 창궐한 에볼라 바이러스는 자이르 바이러스와 유사하지만 DNA 서열이 3% 정도 다른 돌연변이 종이었다. 이 때문에 치사율은 54%로 낮아졌다. 하지만 오히려 낮은 치사율이 에볼라 확산을 촉진시켰다.

2013년 개봉한 영화 ‘감기’는 호흡기로 감염돼 48시간 만에 100% 사망하는 치사율 100%인 최악의 바이러스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 경우 현실적으로 팬데믹을 일으킬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인플루엔자(독감)처럼 계절마다 인간과 전쟁을 되풀이하는 바이러스는 짧은 잠복기와 뛰어난 전염능력을 바탕으로 숙주를 빠르게 옮겨 다니는 ‘게릴라 전략’에 능하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기침이나 재채기가 나기 시작한다. 이 역시 바이러스가 다른 숙주로 옮겨가기 위한 지능적인 전략이다.

전문가들은 팬데믹 가능성이 있는 바이러스 후보로 인플루엔자를 1순위로 꼽고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2009년 신종 플루 대유행을 비롯해 20세기부터 현재까지 네 차례나 대유행을 일으킨 전과가 있다. 또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5N1)와 2009년 신종 플루(H1N1) 유전자가 섞여 돌연변이가 생길 경우 치명적일 수 있다. 조류인플루엔자는 한번 감염되면 치명적이지만 사람 간 전염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 신종 플루는 독성이 낮은 대신 전염 능력은 뛰어나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메르스#비상#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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