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한민국 면역력’ 모으면 메르스 이길 수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6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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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첫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가 발생한 지 16일 만인 어제 메르스 사태의 최일선 현장인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주재하려던 통일준비위원회의 일정을 미루고 치료 현장을 방문했다는 것이 청와대 설명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지난주에 비해 6%포인트 하락한 34%로 집계된 여론조사가 나온 날이어서 현장 방문은 빛을 잃었다. 지지율 하락은 메르스 사태에 대한 정부 대처가 미흡했던 점도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어제 메르스 사태 이후 처음으로 사회관계 장관회의를 주재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어제 메르스 확산의 진원지로 지목된 경기 평택성모병원의 실명을 처음 공개했다. 문 장관은 “41명의 메르스 확진 환자 가운데 30명이 이 병원에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첫 환자가 입원한 지난달 15일부터 병원이 폐쇄된 29일 사이에 평택성모병원을 방문한 사람들이 보건복지부에 신고를 해오면 개별 문진과 검사 및 모니터링을 하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메르스 대책특별위원회가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지역과 의료기관의 정보를 공개하라고 건의했음에도 정부가 요지부동의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실망스럽다. 일부 의사들과 시민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바른 정보와 배경 지식을 알리며 과도한 공포와 소문을 가라앉히려는 분위기다. 메르스의 전파 속도가 빠르기는 해도 분명한 점은 공기를 통해서는 전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현재까지 병원을 떠나 지역사회에서 감염된 사례는 나오지 않고 있다. 지역사회의 전염 차단에 역점을 둘 필요는 있지만 이번 사태가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과학저널 ‘사이언스’ 인터넷판은 ‘소통 간극이 메르스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메르스 발생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한국의 국내 반응을 대비했다. 사우디의 경우 병원 밖에서 감염이 발생했을 때도 학교 문을 닫거나 과도한 공포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한국은 지역사회 감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1000개가 넘는 학교와 유치원이 문을 닫았는가 하면 동물원의 낙타들을 격리시켰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확산되기까지는 ‘대치동발(發) 패닉’도 한몫을 했다. 자가(自家) 격리 중인 여성이 집을 나와 골프장에 갔다는 보도 이후 서울 강남 주민들 사이에 여러 소문이 퍼졌고 학부모들의 요구로 휴교 결정이 잇따랐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키지 않는 한 건강한 사람들은 메르스에 걸려도 독감 정도로 앓고 지나갈 확률이 높다. 미국 국립보건원의 메르스 권위자 빈센트 먼스터 박사는 “메르스 바이러스는 병원 내 감염 수준을 넘어서는 전파력을 갖지 못했다. 대(大)유행의 가능성은 아직 낮다”고 말했다. 그는 사우디에서 메르스 치사율이 40%대로 알려진 것에 대해 “중증 환자들만 통계에 반영돼 치사율이 실제보다 높게 나타났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신부전 당뇨 등의 질환을 앓는 환자들은 메르스에 감염될 확률이 높은 위험군에 속한다. 국내 사망자들은 대부분 고령에 기존 질환이 있어 면역력이 매우 떨어진 상태였다. 메르스가 직접적인 사인이라기보다 방아쇠를 당기는 역할을 했을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 확진자 가운데 두 번째 환자는 처음 완치 판정을 받고 어제 오후 퇴원했다.

잘못된 정보를 믿고 공포를 끝없이 확산하는 것은 질병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가적 손실로도 이어질 것이다. 한국은 2003년에는 사스, 2009년에는 신종 인플루엔자를 지혜롭게 극복했다. 실력 있는 의료진에 첨단 장비를 갖춘 ‘의학 선진국’ 한국은 충분한 극복 능력을 지니고 있다. 국민과 정부가 힘을 합치면 빠른 시일 내에 메르스 퇴치가 가능하다.

효율적인 정책과 성숙한 시민의식이 중요하다. 정부는 의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현 상황을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알리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국민들은 정부에 협조해야 하고 정보와 괴담을 구분하는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세계에 퍼지는 데 3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가 일일 생활권으로 달라진 오늘날에는 감염병의 전파 속도가 훨씬 빠르다. 그에 못지않게 빠른 것이 불안과 공포의 확산이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말처럼 경각심을 가지면서도 막연한 공포를 뛰어넘어야 메르스 제압에 성공할 수 있다.
#메르스#면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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