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 美의회서 상영…러니 제독 “피난민 구출, 신의 섭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5일 15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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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연료로 가득 찬 배 위에 1만4000여 명의 피난민을 태우고 기뢰로 가득 찬 겨울 바다를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신의 섭리였다고 밖에 할 수 없어요.”

파란만장한 한반도 현대사를 그린 영화 ‘국제시장’을 보기 위해 3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연방 의회를 방문한 로버트 러니 미 해군 제독(88)은 ‘신과 기적’을 여러 번 강조했다. 그는 1950년 12월 23일 흥남부두에서 피난민을 마지막으로 태우고 나온 미 해군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 선원 가운데 지금껏 살아있는 단 세 명 중 한 사람.

이날 오후 7시 반부터 의사당 방문센터 내 오리엔테이션 영화관에서 시작된 영화 상영을 앞두고 워싱턴 시내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중공군이 불과 몇 Km 가까이에 진주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자유를 찾아 배를 타고 떠나려 흥남부두를 가득 메운 1만4000여 명의 피난민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며 영화에 큰 기대를 표시했다.

식전 행사가 끝나고 불이 꺼지자 영화는 러니 제독과 부인 존 여사(78)를 65년 전 중공군의 반격에 밀려 아수라장이 된 함경남도 흥남부두로 이끌고 갔다. 기자 옆에 앉은 러니 제독은 긴 숨을 내쉬며 영화로 몰입해 들어갔다. 주인공 덕수(황정민 분)이 배에 기어오르다 여동생 막순이를 떨어뜨리는 장면에선 안타까움이 얼굴에 가득했다.

거의 두 시간 동안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러니 제독은 허리를 곧추 세운 채 한 번도 자세를 흩뜨리지 않았다. 영화 속 덕수를 통해 65년 전 자신이 구해 낸 갚진 생명들 하나하나가 이후 대한민국의 성공과 영광을 위해 피와 땀 흘린 존경하는 한국인이라는 믿음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기자에게 “당시 배 안에서는 다섯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전쟁이 끝난 뒤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그들 중 세 명을 다시 만났다. 모두 훌륭하게 컸고 대한민국 성공의 주역이었다”고 회고했다.

영화가 끝난 뒤 러니 제독은 “이산가족 상봉 장면이 가장 감동적이었다”며 “한국인들이 가족에 대해 가지는 가치를 다시 실감했고 아직 만나지 못한 가족들의 상봉이 이뤄지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존 여사는 “엄청난(incredible) 영화”라며 “과거를 잘 모르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평가했다.

영화 속 흥남부두 철수 장면은 실제보다 조금 더 극적이라는 것이 러니 제독의 평가였다. 실제 피난민들은 부두에서 빅토리호보다 더 큰 배에 질서 있게 올라 탄 뒤 한 줄로 옮겨 탔기 때문에 영화처럼 서로 먼저 타려 밀치거나 기어오르는 상황은 없었다는 것.

또 영화에는 한국인 통역사가 피난민들 태워달라고 애원을 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당시 흥남지역 사령관 네드 앨몬드 장군이 ‘민간인도 구출하라’는 사전 지시를 내렸고 레너드 라루 선장이 인도주의적인 견지에서 스스로 결단을 내렸다는 설명이다.

6·25전쟁이 끝난 뒤에도 미 해군에 복무한 뒤 1987년 전역한 러니 제독은 1997년과 1998년 각각 한 차례씩 북한 지역에 묻힌 미군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북한 현지를 방문했다. 그는 “유해를 찾아낼 때마다 기뻤지만 산화한 동료들의 아쉬운 삶에 마음이 아팠다”며 당시의 복잡한 심경을 회고했다.

미국 우드로윌슨센터와 한국국제교류재단(KF), CJ, 교민단체인 허드슨문화재단 등이 마련한 이날 의회 상영에는 찰스 랭걸 연방 하원의원(민주·뉴욕)과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공화·캘리포니아) 등이 직접 나와 축하했다. 윌슨센터는 영화 ‘국제시장’과 한국 현대사 관련 자료를 CD에 담아 미국 대학들에 교육용으로 배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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