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421>우리 아들 최 감독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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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 최 감독
―최형태(1952∼ )

전공인 영화를 접은 둘째 녀석이
어느 날 갑자기 바리스타에 입문하였다
졸업 작품으로 단편영화를 찍고
개막작으로 뽑히고 하길래
영화감독 아들 하나 두나 보다 했는데
영화판에는 나서볼 엄두도 못 내고
여기저기 이력서 내고 면접도 보러 다니고 하더니
끝내 방향을 틀어버렸다
그러던 녀석이 어느 날 손에 들고 들어오던
권정생 선생 책이라니……
아비 닮아 저런 책이나 좋아한다
이 험난한 청년 수난 시대에 어찌 먹고살려고……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식구들은 그를
감독이라 부른다 최 감독
안 되면 자신의 삶이라도 연출할 테니까
알고 보면 누구나 감독이다


종합소득세 신고 마감일 사흘 전에 세무서에 다녀왔다. 작년에는 약 40만 원을 환급받았다. 올해는 얼마나 받을까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청천 하늘에 날벼락! 납부할 세금이 70만 원을 훌쩍 넘는다. 영세민이었던 내가 처음 종합소득세 신고 안내문을 받은 건 10년쯤 전이었는데 대개는 세금을 환급받았고 재작년에 딱 한 번 납부했다. 그때보다 소득액이 100만 원가량 줄었는데 세금은 세 배가량인 걸 억울해했더니 세무대리인 청년이 고맙게도 나만큼이나 안타까워하며 궁리를 해줘서 조금 감해졌다. 여전히 납득이 안 되지만 내가 모르는 체계가 있겠거니, 그이의 성심을 믿기로 했다.

제 전공에 재능과 애정이 있는 젊은이가 끝내 방향을 틀어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떻게든 전공을 살려보려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러 다니고’ 해도 길이 없는 것이다. 특히 예술계에서는 취업난이 심각해서 ‘열정 페이’라는 이름으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자리나 주어진다. 10여 년 전에 영화 촬영 현장에서 일하는 청년을 만난 적이 있다. 보수를 궁금해하자 한 200만 원이라고 알려줬다. “와, 생각보다 많은데요!” 내 말에 그는 “연봉이 그렇다고요”라며 씩 웃더니 덧붙였다. “이것도 많이 받는 거예요.”

사정이 이러니 많은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달리거나 자영업자가 되려고 ‘바리스타에 입문’한다. 꿈에서 멀어지는 아들을 애잔하게 지켜보며 아버지는 말한다. ‘알고 보면 누구나 감독이다’, 어떤 삶을 살건 네 삶을 ‘연출’하렴. 허술히 살지 말렴!

‘이 험난한 청년 수난 시대에’ 한 청년이라도 더, 세금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세민이 아니라 벅차더라도 세금을 내는 시민으로 살게 되기를….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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