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의 정치해부학]박근혜와 유승민이 함께 사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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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논설위원
박성원 논설위원
“공무원연금법 개정안도 중요하지만, 그것과 국회가 사실상 시행령 수정권을 갖게 되는 국회법 개정안은 차원이 다르지 않나. 그런 국회법은 헌법상 삼권분립 위반 아니냐.”(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

“(박근혜 대통령이)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반드시 타결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시행령 수정권은 여당이 합의해주지 않으면 강제력도 없는데, 안 된다고만 하면 공무원연금법 하자는 거냐, 말자는 거냐.”(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지난달 28일 저녁 유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도중 전화를 걸어온 이 실장과 입씨름을 벌였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의 조건으로 들이민 국회법 개정안 때문이었다.

본질 벗어난 유승민 사퇴론

박 대통령은 사사건건 행정부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동안 잠을 못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지도부까지 가세해 행정부를 포위하는 듯한 상황에 박 대통령의 고심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만하다.

개정 국회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의지는 분명히 천명됐다. 유 원내대표는 “국회의 시행령 수정 요구는 강제력 없다”며 삼권분립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야가 이 조항을 통과시킨 목적이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야당의 요구대로 바꾸기 위한 것이었음을 감안하면, 강제력 없는 조항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국회법을 둘러싸고 친박(친박근혜) 의원들이 마침 잘됐다는 식으로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압박하는 것은 여권 내 소통구조의 고장을 드러낸다. 차제에 박근혜 정부와 코드가 잘 맞지 않는 유 원내대표를 찍어내려 한다는 그럴싸한 해석까지 나돌고 있다.

사실이라면 집권세력이 전략도, 정치력도 없는 집단임을 보여주는 일이다. 친노 패권주의라는 암 덩어리를 수술하지 못해 지리멸렬에 빠져 있는 새정치연합처럼, 친박 패권주의를 부활시켜 여권 분열로 가자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위헌성 해소 위해 손잡아야

박 대통령이 관저든 집무실이든 유 원내대표를 초청해 협조를 요청할 필요가 있다. 오로지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는 대통령 자신뿐 아니라 훗날 어느 대통령이 청와대에 오더라도 국회법 개정안은 심각한 문제가 될 것임을 간곡하게 설득하는 것이다. 여성 대통령의 호소를 듣고도 10년 전 대표비서실장을 지낸 유 원내대표가 자기주장만 바득바득 내세우진 못할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3년 의료보험 개혁안과 정부 부채한도 증액 등을 둘러싸고 연방정부 셧다운(부분 업무정지)에 봉착했을 때 상·하원의 여야 의원들을 번갈아 백악관에 초청해 입이 마르도록 설득했다.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새정치연합을 설득해 다음과 같은 합의문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국회의 정부 시행령 수정요구권과 그에 따른 정부의 처리 및 보고의무를 규정한 개정 국회법 98조는 강제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법률의 위임범위를 벗어나거나 입법 취지에 배치되는 시행령의 시정 요구를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임을 확인한다.’

여야가 이렇게 선언하면 개정 조항의 위헌 논란도 정치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 야당이 이를 거부하고 강제력을 고집한다면 그 자체가 삼권분립 위반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되돌아온 국회법 개정안의 재의결 때 부결시켜 헌법을 지키는 길을 가면 된다. 이것이 박 대통령도, 유 원내대표도 함께 사는 길이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박근혜#유승민#정부 시행령 수정요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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