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지분 7.12% 사들인 美헤지펀드 “합병 반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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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매니지먼트, 단숨에 3대 주주로… “경영참가” 공시

아르헨티나를 국가부도사태로 내몬 전력이 있는 미국계 헤지펀드 회사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삼성그룹과 증권가에서는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주식 매수가 실제 합병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헤지펀드의 전형적인 ‘주가 띄우기’ 행태라고 해석하고 있다.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죽은 시체를 먹는 독수리(벌처)에 빗댄 ‘벌처펀드’로 악명이 높은 만큼 ‘경영간섭→주가 띄우기→매각’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 삼성물산 3대 주주 된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운영하는 펀드인 ‘엘리엇 어소시에이츠’는 3일 기준으로 삼성물산 주식 1112만5927주를 보유하게 됐다고 4일 공시했다. 의결권이 있는 삼성물산 전체 주식 1억5621만7764주 중 7.12%에 해당한다. 국민연금(9.79%), 삼성SDI(7.39%)에 이어 단숨에 삼성물산 3대 주주에 오른 것이다. 이 펀드는 주식 보유 목적을 ‘경영 참가’로 명시했다.

엘리엇 어소시에이츠는 3일 장내에서 삼성물산 주식 339만6387주(2.17%)를 주당 6만3500원에 사들였다. 투입된 자금은 총 2156억7058만 원. 이 펀드는 원래 삼성물산 주식 7729만540주(4.95%)를 갖고 있다 이번 추가 매입으로 경영 공시 의무 기준인 지분 5%를 넘게 됐다.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반대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삼성물산의 가치가 상당히 과소평가된 데다 합병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지난달 26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1 대 0.35 비율로 합병해 9월 합병법인을 출범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에도 일부 금융권에서는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이 너무 낮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발표 당일 삼성물산 주가가 제일모직과 함께 상한가까지 치솟으면서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 시세차익 노린 주가 띄우기?

증권 전문가들은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합병을 무산시키기 위해 실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극히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사가 주식을 매입한 가격은 삼성그룹이 제시한 주식매수청구권 가격 5만7234원보다 6266원(10.95%) 높기 때문이다. 조윤호 동부증권 연구원은 “손실을 보고 팔겠다는 투자자는 없다”며 “결국 엘리엇이 얻으려는 건 시세차익”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공시가 나간 4일 삼성물산 주가는 전날보다 6500원(10.32%) 오른 6만9500원에 장을 마쳤다.

폴 싱어 엘리엇 매니지먼트 회장이 소유한 NML캐피털과 아우렐리우스캐피털이 2008년 액면가 13억3000만 달러(약 1조4763억 원)인 아르헨티나 국채를 4800만 달러(약 528억 원)에 사들였다. 2001년 12월 디폴트 선언 이후 아르헨티나가 채권단과 채무조정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국채 가격이 폭락한 틈을 노린 것이었다. NML캐피털은 2012년 아르헨티나 정부를 상대로 “액면가 100%를 돌려 달라”며 소송을 내 지난해 승소하면서 아르헨티나를 13년 만에 다시 국가부도사태로 내몰았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2003년 미국 P&G의 독일 웰라 인수 발표 때도 “웰라 주가가 저평가됐다”고 주장하면서 법정 분쟁을 일으켜 주가를 크게 끌어올린 전력이 있다.

○ 삼성과 엘리엇 간 지분 경쟁 가능성도

삼성그룹은 크게 문제 될 게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합병을 진행시키려면 주가가 오르는 것이 유리한 만큼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주식 매수가 오히려 합병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광수 미래에셋증권 연구위원은 “삼성 측에서는 지금 손 안대고 코 푸는 격”이라고도 설명했다.

다만 걸리는 것은 삼성그룹의 삼성물산 지분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데 있다. 3일 기준으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1.41%)과 삼성SDI(7.39%), 삼성화재(4.79%) 등 삼성 계열사 지분을 모두 합쳐도 13.99%에 불과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만약 작심하고 지금의 2배 수준의 지분을 확보하면 합병을 무산시킬 수도 있다”며 “이를 막으려면 삼성도 지분경쟁을 벌여야 하는 만큼 주가가 더 오를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채상욱 하나대투증권 연구위원은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합병에 반대하는 척하다 시세차익만 보고 나가버리면 결국 상승장에서 주식을 비싸게 산 소액주주들만 피해를 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2004년 3월 영국계 헤지펀드 헤르메스가 삼성물산 지분 5%를 확보한 뒤 무리한 경영 간섭을 하다가 주가가 오르자 그해 12월 지분을 팔아 시세차익으로만 280억 원을 챙겼다. 대신 헤르메스가 삼성물산 지분을 팔고 나간 후 주가가 떨어져 비싼 가격에 산 개인투자자만 손해를 봤다.

김창덕 drake007@donga.com·정임수·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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