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사약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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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사극 열풍이 영화와 안방극장을 점령했다. 지난해 영화 ‘명량’에 이어 올해도 영화 ‘간신’ 등이 관심을 끌고 있다. TV에서는 지난해 시청률 20%에 이른 ‘정도전’에 이어 ‘징비록’ ‘화정’이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

이들 영화나 드라마에는 어김없이 남장을 한 처녀가 등장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두 달 전쯤 종영한 TV 드라마 ‘빛나거나 미치거나’의 여주인공이 대표적이다. 이름하여 ‘각시도령’이다. 그럼, 여장을 한 총각은 뭐라 부를까. 도령각시라고 하면 될 듯한데 사전에는 없다.

사극은 말할 것도 없고 언중이 잘못 쓰는 표현 중 하나가 ‘선친(先親)’이다. ‘그대 선친의 성함은 무엇인가?’ ‘선친께서는 참 훌륭하셨지’처럼 쓰는데 얼토당토않다. 선친은 ‘남에게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를 이를 때’만 써야 한다. ‘살아 계신 분’과 남의 아버지에게는 쓸 수 없다. 위 문장에서는 부친(父親)이라고 해야 옳다. 돌아가신 남의 아버지는 선대인(先大人), 선고장(先考丈)이라고 한다.

“사약을 앞에 두고 상소문을 쓰는 심정.” 어느 정치인이 한 말인데 한동안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독자 한 분이 사약의 한자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며 메일을 보내왔다. 사약이 ‘死藥=毒藥’이면 말은 되지만, 상소문으로 보아 사약(賜藥)일 듯싶은데 이 경우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약을 ‘死藥’으로 잘못 알고 있다. 그 약을 먹으면 다들 죽으니까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허나, 사약의 바른 한자어는 ‘賜藥’이다. ‘임금이 내린 약’이라는 뜻이다. 사극에서 사약을 받은 사람은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두 번 절한 뒤 기꺼이 약사발을 들이켠다. 그러고 보니 사약을 바로 마시지 않고 상소문을 쓴다는 게 이상하긴 하다.

성은(聖恩)과 승은(承恩)을 헷갈려 하는 이도 많은데, 한자어를 알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성은은 ‘임금의 큰 은혜’를 일컫는다. 문무백관이 머리 조아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라고 외치는 장면을 보았을 것이다. 이때 망(罔)은 ‘없다’, 극(極)은 ‘끝’을 말하므로 망극은 ‘끝이 없다’이다. 즉 임금의 은혜가 갚을 길이 없을 정도로 크다는 뜻이다. 승은에도 ‘임금의 은혜를 받다’는 뜻이 있긴 하나, 보통은 궁녀가 임금의 총애를 받아 밤에 임금을 모신다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사약#간신#징비록#선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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