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어르신 앞으로… 군청에서 ‘생신상’을 차려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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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 情이 흐르는 ‘노인복지’

# 1. 전남 강진군 강진읍에 사는 고유임 할머니(85)는 지난달 21일 따뜻한 저녁밥상을 받았다. 고 할머니의 집을 찾은 이들은 강진읍사무소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 오전 근무를 마치고 온 이들은 홀로 사는 할머니의 집안일부터 챙겼다. 빨래와 청소를 하고 할머니와 함께 마트에서 장을 봤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수박 토마토 과자 등을 사들고 와 냉장고 속을 꽉 채웠다. 고기를 좋아하는 할머니를 위해 돼지 주물럭을 밥상에 올리고 밤늦게까지 말벗도 해드렸다. 고 할머니는 “아들딸처럼 살뜰히 챙겨주니 외롭지 않다”며 “설을 앞두고는 딸 같은 공무원들과 한 이불을 덮고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며 고마워했다.

# 2. 혼자 산 지 올해로 10년째인 오충웅 할아버지(78·강진군 대구면)는 매주 수요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군과 위탁 계약을 한 교회에서 맛있는 반찬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고른 영양 섭취를 위해 불고기 오리탕 생선찜 등 메뉴가 다양하다. 여름이면 삼계탕, 가을이면 추어탕 등 계절음식을 배달해준다. 3일에는 닭볶음탕과 열무김치가 배달됐다. 반찬을 만들어 먹기 힘든 탓에 식사를 자주 걸렀던 오 할아버지는 “경로당에서 밥을 주긴 하지만 할머니들이 많아 가기가 쉽지 않다”며 “작년부터 배달되는 반찬 때문에 일주일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신나는 노래교실 어깨가 들썩 3일 전남 강진군 군동면 관덕리 마을회관에서 ‘레크 노래교실’에 참여한 주민들이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즐거워하고 있다. 강진군 제공
신나는 노래교실 어깨가 들썩 3일 전남 강진군 군동면 관덕리 마을회관에서 ‘레크 노래교실’에 참여한 주민들이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즐거워하고 있다. 강진군 제공
강진군이 찾아가는 복지행정으로 ‘노인천국’의 꿈을 실현하고 있다. 5월 말 현재 강진군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1만1560명으로 군 전체 인구의 29%를 차지한다. 전국 평균(12%), 전남 평균(21%)을 훌쩍 넘는다. 강진군은 올해 전체 예산의 19.7%인 580억 원을 복지예산으로 책정했다. 지난해보다 70억 원이 늘었다. 이 중 노인 관련 예산은 285억 원. 강진군은 단순히 예산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았다. 노인들이 원하는 것을 먼저 살펴 맞춤형 복지정책을 펴고 있다.

강진에서는 노인 10가구 중 4가구가 혼자 산다. 올 2월 설 연휴를 앞두고 강진군청 공무원 124명은 홀몸노인 62명의 집을 찾아 앞치마를 두르고 점심과 저녁을 대접했다. 어르신들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불편한 점을 파악하기 위해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 부부의 날인 지난달 21일에는 지역 11개 봉사단체 회원들도 동참했다. 강한성 강진군 노인복지팀장은 “혼자 사는 노인들이 너무 좋아해 추석이 들어있는 9월과 경로의 달인 10월에도 행사를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여든을 넘어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생일상도 차려준다. 군에서 위탁받은 독거노인지원센터가 미역국 떡 조기구이 나물 등으로 생일상을 마련해 집이나 마을회관에서 조촐한 잔치를 연다. 지난해 90명이 생일상을 받았다. 작천면에 사는 주분기 할머니(80)는 “지난달 생일 때 이웃과 함께 불고기를 배불리 먹고 쌀과 속옷을 선물로 받았다”며 “혼자 살다 보니 생일상은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이렇게 마음을 써 주니 고마울 따름”이라며 웃었다.

읍면을 돌며 열고 있는 군정설명회 때마다 일자리를 만들어달라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자 2012년 500개였던 노인 일자리를 매년 100개씩 늘렸다. 올해는 800여 명이 다양한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아름다운 마을가꾸기, 초등학교 급식도우미를 비롯해 학교 주변을 순찰하는 우리아이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다. 마을회관 주민자치 프로그램의 서예 게이트볼 강사로 나서거나 비누 가죽공예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노인들도 있다.

건강한 어르신들이 사회활동이 어려운 소외계층 어르신을 돕는 일명 ‘노노케어(老老care) 사업’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현재 140명이 70여 명을 돌보며 월 20만 원의 수당을 받고 있다. 강진원 강진군수는 “복지는 현장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며 “가정 해체로 혼자 사는 노인이 늘고 있는 만큼 정서적 외로움을 해소해줄 지원책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진=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노인복지#생신상#강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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