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사진 10페이지에 1장꼴 등장… 이건 교과서가 아니라 정권 홍보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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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의 취재노트]

다와라 요시후미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21’ 사무국장이 2일 일본 도쿄 중의원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극우적 내용이 실린 교과서를 들어 보였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다와라 요시후미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21’ 사무국장이 2일 일본 도쿄 중의원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극우적 내용이 실린 교과서를 들어 보였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도쿄=장원재 특파원
도쿄=장원재 특파원
“올 4월 검정을 통과한 이쿠호샤(育鵬社) 공민교과서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사진이 15장이나 나옵니다. 10페이지마다 1장씩 나오는 셈입니다. 대개 공민교과서에는 총리 사진이 한두 장 정도 나오는데 이렇게 많이 나오다니…. 오랫동안 교과서 문제를 연구한 저로서도 이런 건 처음 봅니다.”

2일 오후 도쿄(東京) 중의원 제2의원회관.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21’의 다와라 요시후미(俵義文) 사무국장이 ‘일본 우익 교과서 채택 저지 운동’ 기자회견에서 기가 막힌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올 4월 일본 정부는 역대 가장 악화된 중학교 교과서 검정을 완료했고 이는 한국을 비롯해 주변국의 반발을 불렀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시민단체들이 최소한 우익 교과서로 아이들이 공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다와라 사무국장은 말을 이었다. “이쿠호샤 교과서 내용 가운데 평화주의를 다룬 부분 중 4분의 1 정도만 실제 평화주의에 대해 언급하고 있고 나머지 4분의 3은 자위대에 대한 설명”이라면서 “아베 총리의 개헌 논리가 거의 그대로 실려 있다. 교과서가 아니라 ‘정권 홍보지’ ‘선전 팸플릿’이라고 해도 될 정도”라며 혀를 찼다.

이날 집중포화의 대상이 된 것은 우익 성향의 ‘이쿠호샤’와 ‘지유샤(自由社)’의 역사·공민 교과서였다. 회견 참석자들은 “이쿠호샤 역사교과서에 실린 ‘일본의 고대 문화인 조몬 문화는 세계 4대 문명보다 우수하다’라는 내용은 세계적으로 통하기 어려운 거짓말”이라는 날선 비판도 가했다.

노히라 신사쿠(野平晉作) 피스보트 공동대표는 “이제 이쿠호샤와 지유샤 교과서가 아이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운동을 해야 할 때”라며 “일본 정부가 교과서를 통해 과거의 전쟁을 미화하는 것에 대해 시민사회는 강력한 반대 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에서 교과서 채택 권한은 지방자치단체 교육위원회에 있으며 올 8월 내년 교과서 채택이 마무리된다.

다와라 사무국장은 “각 지역에서 우익 교과서를 막기 위한 네트워크가 조직되고 있다”며 “2011년에는 43개 단체가 함께했는데 올해는 2배 이상인 90개 단체가 함께하고 있다”며 의욕을 보였다.

기자회견장을 나서면서 이 같은 일본 시민사회의 비판 정신이 살아있는 한 아베 정권의 독주와 우경화를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은 아직 열려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움직임을 알리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가 손꼽을 정도로 적었다는 사실은 매우 아쉬웠다. 이날 한국 언론은 본보 한 곳만이 취재했다. 미래의 건설적 한일관계를 위해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 문제만큼은 양국 언론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아베#교과서#홍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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