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구의 옛글에 비추다]정치인이 부끄러워해야 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중국에 이윤(伊尹)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천한 노비 출신인데 은(殷)나라 탕왕(湯王)에게 발탁돼 재상에 올랐으며 하(夏)나라의 폭군 걸왕(桀王)을 토벌하고 은나라가 천하를 잘 다스릴 수 있도록 했다는 분입니다. 그런데 처음에 탕왕은 이윤을 초빙하고서는, 이윤이 오자 그를 폭군인 걸왕에게 추천했다는군요. 좋은 사람 기껏 불러서 자기는 안 쓰고 남에게 보낸다? 얼핏 이해가 잘 안 갑니다만, 이윤 덕에 걸왕이 개과천선해서 정치를 잘하기를 바라서 그렇게 했다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문제는 걸왕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래서 이윤은 걸왕을 떠나 탕왕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 것이 모두 다섯 번이었다는군요.

조선 전기의 유학자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선생이 이에 대해 ‘이윤이 다섯 번 탕에게 간 것에 대한 논(伊尹五就湯論)’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윤은 천하를 한집안같이 생각하여 반드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제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탕과 걸 사이를 오가면서도 지루하다거나 번거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공자라면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공자는 “군자는 천하의 일에 대해서 꼭 하겠다고 규정하는 것도 없고 꼭 하지 않겠다고 규정하는 것도 없이 의를 따를 뿐이다(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라고 하였다.

어떻게든 백성을 살려보겠다고 자신을 굽혀 가며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한 사람은 이윤이요, 올바른 도(道)가 실현되면 천하가 저절로 다스려질 테니 나는 꼭 어떻게 하겠다고 고집하지 않겠다, 거취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도를 지키는 것을 으뜸으로 삼겠다고 한 사람은 공자이니 공자가 한 차원 높다는 말씀인 듯합니다.

그렇지만 후세 사람들은 이윤에 대해서도 “임금을 요순으로 만들고 백성을 요순의 백성으로 만들려는 뜻을 가져, 한 지아비라도 그 은택을 입지 못하면 자신이 도랑으로 밀어 넣은 것처럼 수치스러워하였다(有志於堯舜君民, 一夫不被其澤, 有納溝之恥)”라며 높이 평가하고 있답니다. 이 평가를 놓고 보면 이윤도 참 대단한 분 같습니다. ‘온 천하의 백성이 잘 살지 못하는 게 나의 가장 큰 부끄러움’이라는 자세, 모름지기 ‘진짜’ 정치인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정치인#이윤#공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