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창가객 강권순(46)이 오늘날 전해지는 12가사(歌詞) 모두를 경남 함양의 한옥에서 하루 동안 완창해 담은 음반 ‘강권순 십이가사’를 냈다. 가사는 한국 전통 성악곡 양식인 정가(正歌)의 세 분류(가곡, 가사, 시조) 중에서도 가장 드물게 실연되는 장르다. 완창 자체로도 희귀한 실황을 현존 최고 음질의 음반 형태인 SACD(슈퍼 오디오 CD) 4장 세트에 담아냈다. 제작사 악당이반의 김영일 대표는 “한 음악인의 새 앨범이 제작비가 많이 들고 제작이 까다로운 SACD 네 장짜리로 발매되는 것은 세계적으로 봐도 드문 일”이라고 했다.
열두 가사(백구사 황계사 죽지사 춘면곡 길군악 어부사 상사별곡 권주가 수양산가 처사가 양양가 매화가)가 담긴 앨범의 총 재생시간은 4시간 6분 49초. 어부사 한 곡만 해도 42분 33초에 달한다. 가사에는 판소리와 달리 가창의 노고를 잠시 덜 아니리(대사)조차 없다. 강권순은 “가사는 호흡이 길고 음역이 높으며 속소리(일종의 가성)를 거의 쓰지 않고 진성으로 노래하기 때문에 시조는 물론이고 가곡과 비교해도 훨씬 까다롭다”고 했다. 그는 연습에만 1년 넘는 시간을 보냈다.
마라톤보다 긴 음반 녹음은 2012년 3월 4일 오전 10시 30분, 방음을 위해 한옥 문틈에 요와 이불을 꽉 끼워 넣고 나서 시작됐다. 세 차례 식사와 휴식을 병행하며 노래를 계속했다. 사위가 어두워지고 ‘불로초로 술을 빚어…’로 시작한 마지막 곡 ‘권주가’가 마지막 대목 ‘…살았을 때 잘 놉시다’로 끝나자 자정에 다다랐다. 강권순은 “막판에 힘이 다하고 목이 쉰 것까지 역력히 녹음에 담겼지만, 스튜디오에서 여러 번 부르고 수정하는 것보다 하루 동안의 기록을 오롯이 남기는 것이 예술가의 진면목에 더 가깝다 봤다”고 했다.
강권순은 가장 진보적인 소리꾼 중 한 명이다. 자유즉흥 음악의 달인 김대환(타악), 강태환(색소폰)과 여러 차례 한무대에 섰고 컴퓨터음악과도 협연했다. 그는 이번에 뿌리를 단단히 잡았다. “박물관화돼 가는 가사의 살아있는 기록을 남긴다는 마음으로 이번 작업에 임했습니다.” 강권순은 김월하 명창(1918∼1996)의 직계 제자 중 하나다.
강권순의 가사는 10∼13일 세계 공연예술의 심장으로 불리는 프랑스 파리 ‘테아트르 드 라 빌’에도 울려 퍼진다.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을 재해석한 실험극 ‘리어 드리밍’ 무대에 선다. “이번 무대의 중심은 바로 가사 ‘상사별곡’입니다. 언젠가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들이 우리 정가와 협연하는 날이 오길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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