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당청 협의 필요없어”… 黨에 ‘국회법 결자해지’ 요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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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법 개정안 충돌]
“여야도 강제성 여부 의견 엇갈려”… ‘사고 친 여당이 수습하라’ 메시지
국민여론도 불리하지 않다고 판단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입법부 횡포’ 논란을 빚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은 국회 스스로 ‘결자해지(結者解之)’하라는 요구다. 공을 다시 국회로 던진 셈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일 “국회법 개정안의 강제성 유무를 두고 여야 간 의견 차이가 있고, 새누리당 내에서도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당청회의를 하는 것은 실효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당청 지도부가 만나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일각의 요구를 차단한 것이다.

이 관계자는 “여야가 공무원연금 개혁안 협상을 진행할 때 청와대는 분명하게 국회법 개정안 통과에 반대했다”며 “그럼에도 새누리당이 개정안 처리를 강행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청이 국정 현안을 놓고 조율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사고’를 친 새누리당이 알아서 이 문제를 수습하라고 요구한 셈이다. 청와대의 강경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관계자는 전날 박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자 “결국 국회에 법적 절차와 정치적 절차 두 가지 관점에서 신중하게 판단할 것을 요구한 셈”이라고 말했다. 법적 절차의 관점에서 문제가 된 국회법 개정안을 바로 정부에 넘길 것인지, 정치적 절차의 관점에서 국회가 시행령 수정을 요구할 경우 강제성에 대한 통일된 입장은 무엇인지 국회가 먼저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강공 카드’는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는 분석이 나온다. 먼저 국회는 국회법 개정안의 송부 시기를 1주일 정도 미뤘다. 국회 내부에서 논란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강제성 유무를 두고 여야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자신들이 만든 법을 두고도 서로 딴소리를 한다’는 ‘사오정 국회’ 논란이 커졌다. 특히 여당 내부는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비박근혜)계가 확연한 의견 차이를 보이면서 단일 대오를 형성하기 힘들어졌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법안의 재의결을 시도하기 힘든 상황에 놓인 것이다.

국민 여론도 청와대에 불리하지 않다. 리얼미터가 1일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개정 국회법이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는 응답이 35.7%로 ‘위배되지 않는다’는 응답(29.9%)보다 앞섰다. 다만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34.4%로 적지 않아 앞으로 청와대와 국회 사이에 여론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일 “박 대통령이 국정 마비를 부를 수 있는 국회법 개정안의 문제점과 심각성을 얘기했는데, 대통령의 발언을 폄훼하는 것은 국민이나 민생을 위해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너무 걱정하거나 호들갑 떨지 않아도 된다”는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의 발언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여론전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청와대의 ‘강경 대응’이 국회를 자중지란에 빠뜨려 국회법 개정안 폐기라는 성과를 거둘지, 아니면 여야 대립이 격화돼 국정 운영에 브레이크가 걸릴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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