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생땐 “전염력 약해”… 환자 늘자 “병원내 감염일 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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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비상/구멍난 국가방역체계]비난 피하기 급급한 정부

“전망은 성급하면서 안이했고, 조치는 소극적이며 느렸기 때문에 결국 더블쇼크(사망자와 3차 감염자 발생)가 발생한 것이다.”

2일 국내에서 첫 번째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망자와 3차 감염자가 발생하자 보건당국의 전체적인 대응 전략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국내에서는 경험한 적이 없는 감염병이 터졌는데도 세계보건기구(WHO)와 다른 나라들의 사례만 맹신하며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것. 전병률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감염병은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무조건 최악의 상황을 설정한 뒤 강력한 대응 전략을 짜야 한다”며 “처음부터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한 게 문제”라고 말했다.

메르스 바이러스
메르스 바이러스
실제로 메르스와 관련해 보건당국이 내놓은 전망은 모두 빗나갔다.

지난달 20일 1번 환자(68)가 메르스로 확인된 직후 보건당국은 ‘중증호흡기 질환이라 치사율은 높지만 전염력은 약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2주 만에 환자 수가 25명(사망자 2명 포함)으로 늘었고, 1번 환자가 심한 증세를 보이던 지난달 15∼17일 입원했던 경기 P병원에서는 무려 19명의 감염자가 발생했다.

2m 이상 거리를 두고 접촉하면 ‘비말(작은 침방울)’이 전파될 위험이 없다는 설명도 10m 이상 떨어진 같은 병동 내 다른 병실에서 감염자가 다수 나오면서 명백한 오판으로 드러났다.

3차 감염도 마찬가지다. 보건당국은 3차 감염자가 확인되기 하루 전까지도 공식 브리핑 등에서 ‘3차 감염의 발생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주장했다. 설대우 중앙대 약학부 교수는 “메르스에 대한 연구가 오래 지속되지 않은 만큼 기존 연구에 의지하기보다는 얼마든지 전파될 가능성을 예측하고 방역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요 전망이 모두 틀렸지만 보건당국의 ‘장밋빛 전망’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까지 파악된 3차 감염자들에 대해서도 ‘병원 내 감염(hospital infection)’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3차 감염이라고 해도 일반인들 사이에서 병이 대거 퍼지는 ‘지역사회 감염(community infection)’이 아니어서 대대적으로 확산될 위험은 낮다는 것이다.

전망 못지않게 대응도 부실했다. 초기 환자들에 대한 역학조사에서부터 구멍이 뚫렸기 때문이다.

우선 보건당국은 1번 환자와 같은 병실(2인실)에 입원했던 3번 환자(76)가 아들(10번 환자)과 접촉한 것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10번 환자는 중국 출장 중 병세가 심각해져 격리 치료를 받게 됐고, 이제는 중국에서 메르스 환자 발생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보건당국은 “조사 대상자들이 처음부터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지 않아 터진 문제”라고 변명하고 있다.

국내에서 ‘메르스 진원지’가 된 P병원에서 다른 병실을 썼던 환자들이 어떻게 1번 환자와 접촉했는지를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부실한 대응 실태를 보여주는 증거다.

보건당국은 1번 환자의 병원 내 동선, 병동 내 환기 시스템, 의료진의 진료도구 등을 분석하고 있지만 확실한 결과를 내놓고 있지 못하다. 이에 따라 19명의 감염자가 나온 장소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를 빠르게 밝히지 못하는 것 자체가 의문과 우려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메르스 환자가 계속 나오며 우려가 커지자 보건당국은 잠깐이라도 접촉했던 사람들은 모두 자가 격리 대상자로 지정하는 등 격리 조치를 대폭 강화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10번 환자와 지난달 26일 같은 비행기를 탔던 승객들 중 국내 보건당국 기준으로는 20명이 필수 격리 대상이다. 하지만 홍콩은 30명이 필수 격리 대상이다. 비행기 탑승객에 대한 명확한 격리 기준이 없지만 지금처럼 위기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보다 적은 수의 사람을 격리 대상으로 정한다는 것 자체가 안이한 대응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이미 수차례 느슨한 규정을 적용하다 위기가 커진 상황인 만큼 보건당국이 더욱 강화된 기준을 적용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메르스로 인한 위기감이 커지자 청와대는 이번 주가 메르스 확산을 막을 중요한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2일 ‘메르스 긴급 대책반’을 꾸려 24시간 가동에 들어갔다. 긴급대책반은 보건복지부의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와 국민안전처의 ‘비상상황관리반’ 등 관련 부처의 상황대책반과 긴밀히 연락해 상황을 점검하고 추가 확산 방지대책을 논의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메르스 확산과 관련해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고 지적한 뒤 “국가적 보건역량을 총동원하라”고 지시했다.

이세형 turtle@donga.com·김수연·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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