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개월째 불황형 흑자’로 침체 가속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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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름 깊은 한국경제]2015년 4월 81억달러… 최장기록 눈앞
수출 부진속 수입은 더 줄어들어 원-엔 환율 2008년 2월 이후 최저

수출 부진에도 경상수지 흑자가 쌓이고 이 때문에 원화 가치가 올라 경제에 부담을 주는 ‘불황형 흑자’ 현상이 3, 4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불황의 악순환은 1990년대 초반 일본이 장기 불황에 빠져들기 직전의 경제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게다가 불황형 흑자로 달러가 넘쳐나면서 원화가 엔화에 비해 강세를 보이면서 한국의 수출경쟁력은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4월 경상수지는 81억4000만 달러 흑자를 내면서 2012년 3월 이후 38개월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흑자 기간으로 보면 ‘3저(低·저금리 저유가 저원화) 호황’ 시기였던 1986년 6월∼1989년 7월과 같은 기록이다. 경상수지 흑자는 5월에도 이어져 새 기록을 달성할 것이 확실시된다. 문제는 과거와 비교했을 때 요즘 흑자의 질(質)이 형편없이 떨어진다는 데 있다. 수출이 전년 대비 30∼50%씩 불어나던 1980년대 후반과 달리 최근에는 수출과 수입이 함께 급감하는 불황형 흑자다.

올해 1∼4월 수출은 1859억 달러로 작년 동기 대비 11.2% 감소했지만 수입은 이보다 더 많은 18.2%나 줄어 기형적 흑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경상수지는 2013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892억2000만 달러 흑자로 기록을 경신했고 올해에는 1000억 달러 흑자를 바라보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7%에 이르는 규모다.

유가 하락 등 외부 요인이 있긴 하지만 수입량 감소는 무엇보다 국내 경기의 부진이 가장 큰 원인이다. 투자와 소비가 침체돼 해외 원재료와 수입품의 수요가 떨어지는 것이다.

곽영훈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수출이 주는데도 내수가 더 안 좋아 경상흑자가 커지고 원화 가치가 오르는 ‘원고(高) 불황’이라고 현재 상황을 진단했다.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는 외환시장에서 원화 가치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2일 원-엔 환율(오후 3시 현재)은 100엔당 892.49원으로 하락(원화 가치는 상승)했다. 2008년 2월 말 이후 최저치다. 4월 말 한때 900원 선이 붕괴된 원-엔 환율은 지난달 27일 다시 900원 밑으로 뚫고 내려온 뒤 하락세를 보이며 연일 최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저물가와 불황형 흑자가 동시에 나타나는 현재의 양상은 장기 불황 초입에 들어섰던 1990년대 일본과 흡사하다”며 “금리 인하 등 과감한 통화정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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