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스 방역 모범국’이 어쩌다 ‘메르스 후진국’ 됐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3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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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망자와 3차 감염자가 발생하면서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발생 초기에 보건 당국은 “메르스는 전염성이 1인당 0.7명으로 높지 않으며 3차 감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으나 모두 거짓말이 됐다. 국내 확진 환자는 25명으로 늘어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다음으로 많다. 격리 대상자는 750명에서 점점 불어나고 있다.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경기도에서는 수십 곳의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휴교에 들어갔다.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에 대한 신뢰가 급속히 추락하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해 세월호 사고 때 한국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퍼졌을 때와 흡사한 흐름이다. 이에 따라 일본과 중국 관광객들의 예약 취소도 잇따르고 있다.

메르스 발생 초기부터 지금까지 정부의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점은 큰 문제다. 2003년 3월 중국에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확산됐을 때에는 고건 당시 국무총리의 지휘 아래 신속하고 철저한 대응으로 재난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당시 한국에는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나 국무총리가 나서서 군(軍)을 포함한 관계 부처들을 총동원했고 범정부 차원의 사스 종합상황실을 만들었다. 고 총리는 “사스 의심 환자를 강제 격리하겠다”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며 협조를 당부했다. 이 덕분에 중국과 홍콩에서만 65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대란(大亂)에도 한국은 확진 환자가 1명도 나오지 않았다.

12년 전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사스 예방 모범국’이라는 칭찬을 받았던 한국이 지금은 메르스를 중국과 홍콩에 전파해 주변국들의 눈총을 받는 나라가 됐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0일 첫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온 지 11일 만인 지난달 31일에야 민관합동대책본부를 만들었다. 최경환 국무총리 대행은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지 보름이 거의 다 된 어제 처음으로 관계 부처 장관회의를 열었다.

처음부터 질병관리본부에만 맡기고 다른 부처들은 나 몰라라 했으니 곳곳에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 중동을 다녀온 환자가 메르스 검사를 여러 차례 요청했는데도 질병관리본부는 무시했고, 의심 환자가 홍콩과 중국으로 출국하도록 방치해 나라 망신을 초래했다. 해외에서는 한국 여행객에 대한 검역을 중동 여행객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한다. 관광수지를 비롯한 경제에도 타격이 크다.

지난해 세월호 사고가 대형 참극으로 이어진 것은 관피아(관료+마피아)와 부도덕한 기업가의 원죄 이외에도 구조 과정에서 정부에 컨트롤타워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국가 재난 문제의 컨트롤타워로 출범한 국민안전처는 어제서야 긴급대책회의를 소집했다. 그러나 정부 부처들이 저마다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면 컨트롤타워가 과연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그동안 시스템을 고친다, 새로운 정부 조직을 만든다 법석을 떨었지만 정부의 안전 대책 수준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고건 전 총리는 훗날 “사스 방역을 전쟁처럼 치렀다”고 말했다. 그만큼 치열하고 민첩해야 하는 게 방역이다. 이제부터 대통령이라도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사스#메르스#3차 감염#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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