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훈련병 해칠 것 같다” 관심병사 자살 암시했지만 軍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일 17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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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중 총구를 돌려 다른 훈련병을 해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계속 있다가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아서 자살, 포기했습니다.”

지난해 1월 군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모 씨(당시 21세)가 두 번째 자살 시도 실패 후 훈육조교 등에게 털어놓은 말이다. 유 씨는 여러 번 자살을 암시하는 신호를 보냈지만 번번이 묵살 당했다. 이미 입대 전인 2012년 1월 징병검사 당시에도 병무청 복무적합도 검사에서 ‘정신과적 문제가 의심됨. 군 생활에 어려움이 예상되며 사고의 위험이 있음’이라는 취지로 정밀진단(위험) 판정을 받은 데다 입대일인 2013년 11월에도 “군 생활에 있어 어려움이 예상되며 군 복무 중 사고로 인한 조기 전역이 예측된다”는 판정을 받은 터였다.

유 씨는 훈련소에서 틈틈이 자살을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훈련동기가 유 씨의 관물대에서 유언장을 발견하기도 했고, 자살시도 가능성이 있다는 상담 결과도 나왔지만 군은 지난해 1월 유 씨를 다른 신병들과 동일한 등급으로 분류해 부대로 배치했다. 뒤늦게 면담실시 후 관리등급을 상향하고 멘토병사로 지정했지만 결국 유 씨는 연병장 나무에 목을 매고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9부(부장판사 함종식)는 유 씨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81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2일 밝혔다.

재판부는 “부대 지휘관들은 유 씨를 집중 관리하면서 적절한 면담, 의사 진단 등을 받게 해 군 생활을 할 수 있는 상태인지 여부를 면밀히 살폈어야 했음에도 정신과 진료나 치료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멘토 제도가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등 부대의 조치가 유 씨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유 씨를 주의 깊게 관리, 감독하거나 필요한 조치를 다하지 않았다”며 국가에 배상책임이 있다고 봤다. 다만, 재판부는 유 씨가 문제 해결 노력 없이 자살을 선택했다고 판단해 국가의 책임을 20%로 제한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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