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건 기자의 인저리 타임]UEFA의 으름장, FIFA의 콧방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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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축구연맹(FIFA)은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유럽축구연맹(UEFA)의 요구가 존중되지 않으면 연맹을 탈퇴하겠다.” 요즘 언론을 통해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1994년 12월 UEFA 회장이던 렌나르트 요한손(86)이 한 말이다. 그러나 주앙 아벨란제 FIFA 회장은 요한손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결국 요한손 회장은 “FIFA를 전면 개혁하겠다”며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차기 회장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결과는 패배. 요한손은 아벨란제 회장 아래에서 17년 동안 FIFA 사무총장으로 일했던 제프 블라터(79)를 넘지 못했다.

▷21년 전 FIFA에 대한 UEFA의 가장 큰 불만은 비민주적 행정이었다. 불공정한 절차로 구성된 위원회를 앞세워 수뇌부가 독단적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약물 파동을 일으킨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에 대해 UEFA가 강경 조치를 촉구했지만 중남미 회원국의 정서를 고려한 아벨란제 회장이 징계를 완화한 것이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반기’를 든 가장 큰 이유는 대륙별 월드컵 본선 티켓의 수였다. UEFA는 본선 진출국이 32개로 늘어나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부터 12장이던 티켓을 5장 더 늘려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FIFA는 2장을 늘려 주는 데 그쳤다. 지금의 거대한 부패 스캔들과 비교하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1954년 태동한 UEFA는 1904년부터 세계 축구를 관장해 온 FIFA와 번번이 부딪쳤다. 그럴 만도 하다. 유럽은 세계 축구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해 선수 영입에 따른 이적료만 4조 원이 넘는 거대 시장이다. ‘국가 대항전’인 월드컵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UEFA가 주관하는 ‘클럽 대항전’은 비유럽 국가 축구팬들에게도 엄청난 관심사다. 미셸 플라티니 회장(60)이 이끄는 UEFA는 FIFA를 탈퇴하는 것과 함께 회원국들의 월드컵 보이콧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 하나. 17년 전 블라터가 처음으로 FIFA 회장에 당선될 때 플라티니는 큰 공을 세웠다. 그 덕분에 2007년 플라티니는 요한손을 꺾고 UEFA 회장으로 뽑힐 때 블라터의 지원을 등에 업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된 것이다.

▷UEFA는 6일(현지 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바르셀로나(스페인)와 유벤투스(이탈리아)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총회를 소집했다. 여기서 UEFA의 대응 방안이 심도 있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블라터 개인의 비리가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는 이상 UEFA의 경고는 과거처럼 으름장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블라터 정책’의 혜택을 받은 다른 대륙의 반발이 예상되는 데다 UEFA 구성원들조차도 한목소리를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요한손(스웨덴)도, 블라터(스위스)도, 플라티니(프랑스)도 모두 유럽 출신이다.

▷21년 전 ‘FIFA 탈퇴 카드’를 만지작거렸던 요한손은 최근 인터뷰에서 “세계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가 그런 지도자 아래에 있는 것은 불행이다. 2018년 월드컵 개최지부터 다시 결정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한때 축구계의 정적이었던 요한손과 플라티니가 블라터를 타깃으로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말은 많았어도 행동은 없었던 UEFA가 이번에는 뭔가 보여줄 수 있을까.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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